액션 페인팅 대표 화가 빌럼 데 쿠닝

독특하고도 격렬한 그의 화풍은 추상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네델란드 출신의 미국 화가 빌럼 데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년-1997년)은 잭슨 폴록과 함께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화가로 불리며, 20세기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이다. 그의 독특하고도 격렬한 화풍은 추상표현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구상과 추상이 합쳐지는 순간 낼 수 있는 모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01_그에게 작품이 구상이냐 추상이냐는 중요하지 않아

…누구의 이름이 물에 기록되었는가 1975년, 유화

이 화가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드러내는 다양한 기법은 어디에도 구애 받지 않는 무한한 자유를 상징한다. 그에게 작품이 구상이냐 추상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기존의 어떤 미술 형태에도 얽매이지 않고 추상과 구상을 한 화면에 믹스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해내었다.

데 쿠닝은 “저는 그림을 디자인, 형태, 선, 색으로 ‘추상화’하거나 사물을 제거하거나 축소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드라마, 분노, 고통, 사랑, 인물, 말, 공간에 대한 제 생각 등 더 많은 것을 계속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여러분의 눈을 통해 그것은 다시 감정이나 아이디어가 됩니다”라고 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내면 속에 꿈틀거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해방을 어떤 형식이나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화면 속에 표출하려 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02_1930년대 중반까지 상업미술 작품으로 생계 유지

강으로 가는 문 1960년, 유화

1904년 네델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빌럼 데 쿠닝은 어려서부터 낮에는 상업미술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로테르담미술공업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브뤼셀과 안트웨르팬에서 2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26년 22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뉴저지에 도착해 페인트공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이듬해 뉴욕 맨허튼에 자리를 잡았는데, 같은 시기 아르메니아에서 온 화가 아실 고키와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프란츠 클라인과 교류하며 작업을 했지만 1930년대 중반까지 상업미술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마크 로스코와 다른 추상화가들과 WPA (공공사업촉진국)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화가들에게 공공건물의 벽화 제작을 위촉한 연방 미술계획에 참여했다.

1938년 34세의 데 쿠닝은 20살의 일레인 프라이드를 만나 그녀에게 드로잉과 회화를 가르치며 사랑에 빠졌다. 일레인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유대계 집안의 장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레오나르드 다빈치 미술학교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데 쿠닝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1943년 시청에서 약식 결혼을 해 부부가 되었다.

지성적이고 예술에 열정적인 일레인은 빌럼의 그늘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추상표현주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1952년 첫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그들은 부부의 순결서약과는 무관하게 서로의 애인을 가지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으나 예술적인 면에서는 같은 추상표현주의의 길을 걸으며 예술적 동반자의 삶을 살았다. 화가이자 미술평론가로 활약하던 일레인은 가르치는데도 뛰어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강연 여행을 다녔으며, 죤 에프 케네디의 초상화를 그려 백악관에 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03_‘분홍색 천사’에서는 갈기갈기 찢겨진 인간들의 절규가

노래하는 여인들2 1967년, 유화

1940년작 ‘앉아있는 여인’은 앞으로 데 쿠닝이 평생 그리게 될 ‘여인’ 연작의 초기 작품이다.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연구용으로 시도된 이 작품은 반추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청록과 연두, 붉은 갈색의 색면이 널찍널찍하게 칠해진 배경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눈, 코, 입, 유방은 사실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고, 노란색으로 칠해진 하반신과 몇 개의 명쾌한 곡선으로 그려진 다리는 여성성을 들어낸다. 여인의 해체된 형태에서는 피카소의 입체주의의 흔적이 나타난다.

배경의 기하학적으로 처리된 색면이나 해체된 팔의 형태 등 구상과 추상의 오묘한 배합과 산뜻한 원색이 주는 여성적인 이미지는 이후의 그로테스크하게 변화해가는 그의 ‘여인’ 연작에서 보기 힘든 순수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945년에 그려진 ‘분홍색 천사’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찢겨진 분홍빛 살색의 향연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 핑크색은 여성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해체되어 본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분홍빛 덩어리에서 여성성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이 분홍빛 유기체는 황갈색의 배경과 합체되어 경계가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하는 이 작품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인간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04_추상표현주의는 전후 미국 미술계에 들불처럼

다락방 1949년, 유화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후, 예술의 중심은 유럽에서 망명한 예술가들을 품은 미국으로 급격히 옮겨져갔다. 그들은 뉴욕에 자리잡고 미국이라는 젊은 땅에 예술이라는 자양분을 흘리기 시작했고, 유럽에 대해 문화적인 열등감을 감추고 있던 미국인들은 게걸스럽게 그들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뉴욕에 자리잡은 그들은 자신을 뉴욕화파라 부르며 예술활동을 했지만, 그들의 사상이나 예술은 보다 자유롭고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젊은 뉴욕화파들은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확립된 이론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추상표현주의라는 기치아래 모여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칸딘스키에서 비롯된 추상표현주의는 뜨거운 추상이라 불리며 전후 미국의 미술계에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은 창조적인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다. 물감이 지닌 각양각색의 물리적 특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신비감, 서정성을 불러일으킨다.

 

05_커다란 붓으로 페인트 듬뿍 찍어 화폭에 거칠게 휘두르며

발굴 1950년, 유화

추상표현주의의 중요한 무브먼트 중 하나인 액션 페인팅은 1952년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명명한 전후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 표현방식이다. 그려야 하는 이미지보다도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순수한 의미를 찾아내는 액션 페인팅은 직관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화가의 경험과 내면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액션 페인팅은 형태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관중은 뿌려지거나 칠해진 물감 하나하나에 기록되어 있는 기호를 찾아내며 그 안에 녹아있는 작가의 열정과 고뇌, 사상과 감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화가로 잭슨 폴록, 빌럼 데 쿠닝,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를 들 수 있다. 잭슨 폴록이 화면에 물감을 뿌려대며 드리핑이라는 장르를 개발하고 있는 동안에도 데 쿠닝은 붓으로 그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커다란 페인트 통에서 커다란 붓으로 듬뿍 페인트를 찍어 화폭에 거칠게 휘두르며 빚어내는 구상의 형태는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06_1948년 뉴욕서 흑백의 추상화 작품들로 첫 개인전

분홍색 천사 1945년, 유화

데 쿠닝은 1948년 뉴욕 이건갤러리에서 흑백의 추상화 작품들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47년부터 데 쿠닝의 흑백 추상화가 시작되었는데, 1949년 작 ‘다락방’은 그의 흑백 추상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기호와도 같은 형태들이 어우러져 많은 스토리가 숨어있는 듯한 미스테리한 화면을 창조했다.

흑색 선들로 이루어진 직선과 곡선들의 결합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배경같이도 보여 ‘다락방’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정서적인 움직임으로 가득 차있다.

1950년작 ‘발굴’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욱 추상적이고 실험적으로 변화해가는 그의 스타일과 표현방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세로205cm, 가로 254cm의 거대한 화면에 여러 가지 추상적 형태가 그려져 있다.

‘발굴’ 안에 그려져 있는 형태들은 기하학적 형상이나 유기체적인 형상을 떠나 오랜 세월 묻혀있던 생명체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문화, 숨쉬며 살아있을 때 행한 모든 삶의 모습이 봉인되었던 껍질을 깨고 드러나고, 영겁의 시간과 함께 스러져가는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다락방’과는 달리 언뜻언뜻 보이는 붉은색으로 흑백추상화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색 추상화로 넘어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07_생식과 다산 이미지 외 성적인 힘이 주는 폭력성 표현

앉아있는 여인 1940년, 유화

데 쿠닝은 1940년대 초부터 정기적으로 여성의 초상을 그렸는데, 초기에 나타나는 초상이 유기적인 생물체로 묘사되어 추상적인 경향이 짙은 반면 1950년 경부터 그려진 여인상은 보다 더 구상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여인1’ (1950년-1952년)은 강렬한 색채와 거칠고 격렬한 선이 어우러져 빚어낸 여인상의 혁명이다. 과거에 여인을 이런 형태로 표현한 화가는 없었다. 화가는 전쟁을 겪은 후 공격적이고 과감하게 변화된 여성상을 표현하고, 그것에서 남성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위협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여인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언발란스하게 커다란 눈으로 돌출된 이빨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모습은 여인이라기 보다는 야수에 가깝고,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유방은 성적인 우월성을 상징한다.

고대 토템이 가지고 있는 생식의 우상화가 느껴진다. 구상과 추상이 어지럽게 섞여 추상표현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화가는 여성이 가지는 생식과 다산의 이미지 외에도 성적인 힘이 주는 폭력성을 표현하고 있다.

 

08_4000불에 판매한 ‘인터체인지’가 3억불로

여인1 1950년~1952년, 유화

1955년 제작된 ‘인터체인지’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작품이다. 추상표현주의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터치로 이루어져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의 움직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제목이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식의 교류, 그에 따른 상호작용을 그린 화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정과 내면의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당시 프란츠 클라인과 빌럼 데 쿠닝은 서로의 기법에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이 작품은 그들의 이러한 경향으로 변화된 데 쿠닝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클라인은 직관적이고 빠른 붓놀림으로 흑백의 캔버스를 채우곤 했는데, 데 쿠닝은 칠한 데 또 칠하고, 캔버스가 뚫릴 정도로 붓질을 계속하여 생겨난 중첩된 이미지가 특징이었다. 이 작품에서 데 쿠닝은 격렬하고도 중복되는 터치가 아닌 빠르게 움직이는 터치를 보여준다.

1955년 화가가 4000불에 판매한 이 작품은 2015년 케네스 그리핀에게 3억불에 판매되어 당시 기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

또한 1957년작 ‘7월 4일’은 그가 여인상에서 눈을 돌려 풍경화에 몰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많은 실험적인 시도가 중첩되어 나타난 결과물은 우리에게 풍경화가 이렇게 그려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작품 하단에 테이프를 붙였다 떼낸 흔적인 흰색의 가는 선은 풍경의 지평선을 상징하는 것 같고, 종종 작품에 콜라쥬를 사용하는 그의 기법이 이번에는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09_정서적 안정감과 풍족한 삶이 주는 여유

인터체인지 1955년, 유화

1960년작 ‘강으로 가는 문’은 1950년대 후반 뉴욕과 롱 아일랜드 동부를 오가며 그림을 그렸던 시기의 작품으로, 넓적한 붓으로 자유롭게 칠해진 노란색의 붓터치와 무채색 바탕에 연핑크의 넓적한 색면이 보인다. 이들은 함께 모여 캔버스 중앙에 문 모양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그 아래에는 강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의 흔적이 보인다. 그의 초기 작품처럼 계속해서 덧칠한 것이 아닌 단숨에 그린 것 같은 속도감이 보이고, 격동적인 추상화의 초자연적인 장엄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데 쿠닝은 1963년 롱 아일랜드의 이스트 햄프턴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만들고 정착했다. 이 시기 그의 화풍은 정서적인 안정감과 풍족한 삶이 주는 여유 같은 것이 묻어 나온다. 1966년작 ‘노래하는 여성2’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데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인 것 같다.

그동안 그려왔던 수많은 여인상에서 보여지는 격렬하고 파괴적인 에너지는 부드럽고 안온한 분위기로 바뀌어졌다. 도전적인 연핑크는 보다 가라앉은 살색으로 바뀌었고, 노래하는 두 여인을 둘러싼 배경도 파스텔 톤의 사랑스러운 색감이다. 여인들의 금발과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입술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는 봄바람과도 같다.

 

10_수억불서 수천만불 호가하며 현대미술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페인팅 1948년, 유화

1975년 그려진 ‘…누구의 이름이 물에 기록되었는가’는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물의 유동성과 격정적인 움직임을 담았다. 가장자리가 해어지고 물방울이 얼룩진 화폭에 크고 작은 형체들을 그렸는데, 이들은 물 속을 유영하듯 빠르고 미끄러운 느낌을 준다.

이 그림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데 쿠닝은 1960년 로마에서 술에 취해 돌아다니던 중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묘비문에 적힌 글을 보았는데, 그 비문에는 ‘물에 이름이 쓰여진 사람이 여기에 누워 있습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15년 후에 그때의 느낌을 되살린 데 쿠닝은 붉은 선과 푸른 선들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한 모습을 그렸다. 폐결핵을 앓다가 죽은 키츠의 붉은 선혈과 데 쿠닝이 사랑한 물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우리를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다.

데쿠닝과 일레인은 1956년부터 별거를 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20년이 지난 1976년 다시 재결합을 해 데 쿠닝의 회화작업을 도왔다. 말년에 데쿠닝은 알콜 중독과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작업을 계속했고 그의 곁에는 항상 일레인이 있었다. 그러나 일레인은 1989년 70세의 나이로 폐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수억불에서 수천만불을 호가하며 현대미술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꼽힌다. 홀로 남은 데 쿠닝은 1997년 92세의 나이로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랜 시간 살아오며 수많은 걸작들을 발표한 데 쿠닝은 추상표현주의의 거목으로 우뚝 서, 많은 젊은 화가들의 지표가 되고 현대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 다음은 인상파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와 함께 파리의 정취를 느껴보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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