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의 선구자 한스 아르프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사 중요한 위치 차지… 우리에겐 좀 생소한 화가

프랑스 화가 한스 아르프 (Hans Arp, 1887년-1966년)는 20세기초 세계를 휩쓸며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모태가 된 다다이즘을 이끈 선구자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시인, 작가, 디자이너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화가이다.

 

01_비논리적 무의미로, 논리로 위장한 기성 가치에 저항

구성 유화, 1926년

비논리적 무의미로, 논리로 위장한 기성의 가치에 저항하는 다다의 창시자인 한스 아르프는 “다다는 인간의 이성적 속임수를 파괴하고 자연과 비이성적 질서 회복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는1916년 다다운동을 창시해 콜라주와 부조형식의 작업을 하였고, 1925년에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30년 ‘추상 창조그룹’에서 추상적인 형태를 연구하는 등 일생에 거쳐 변화를 주저치 않는 삶을 살아온 예술가이다.

마침내 이 모든 여정을 거치며 도달한 곳은 환조라는 구체 예술의 형태였다. 구체예술은 추상예술의 또 다른 말로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을 묘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미술이다. 자연의 구체적 대상을 거의 재현하지 않고, 색, 선, 형 등의 추상적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미술양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환조란 형상을 완전한 입체로 제작해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조형기법이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근원적인 인간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환조 형식의 조각작품은 그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충만한 작품으로 많은 현대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콜라주에서 시작해 채색부조라는 형식을 개발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환조라는 궁극의 조각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정은 끝없는 탐구와 도전의 반복이었다.

 

02_독일 표현주의 그룹의 뮌헨 ‘청기사 운동’ 1914에 참여

꽃과 망치 1916년

한스 아르프는 1886년 프랑스 알자스주 스트라스부르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계 프랑스인이다. 알자스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역으로 보불전쟁 이후 독일로 편입되었다가 후에 다시 프랑스 영토로 환원되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지역으로 한스 아르프는 후에 장 아르프로 개명해 독일식과 프랑스식의 두 가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르프는 1904년 스트라스부르의 에술대학을 졸업하고 1905년부터 1907년까지 독일의 바이마르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1908년 파리의 아카데미 쥘리앵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했다.

1912년 칸딘스키와 함께 뮌헨에서 독일 표현주의 그룹의 뮌헨 ‘청기사 운동’ 1914에 참여하였고, 1914년에는 파리로 돌아와 모딜리아니, 피카소, 로베르 들로네와 교류를 가지며 미술활동을 하였다.

 

03_기존 가치 부정하고 자연적 질서로 돌아가야 한다

날개 달린 개체 청동조각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유럽을 휩쓴 세계 제1차 대전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든 비극적이고도 참담한 전쟁이었다. 사람들이 찬양하던 산업사회의 발전은 결국 대포와 탄환이라는 전쟁의 도구가 되어 도시를 파괴하고 인간들을 살상했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과 비참함은 그들이 여태껏 알아왔던 전통과 기존의 질서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하였다.

전쟁을 겪은 예술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했던 기존의 가치가 사상누각이라 느끼고, 그들이 중요시했던 인간의 이성에 의한 모든 사상들이 초래한 이 전쟁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표했다. 문학과 미술, 조각, 건축 등 모둔 분야의 예술인들은 이러한 회의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연적 질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다다이즘이라는 급진적인 예술사조를 탄생케 하였다.

 

04_소피 토이버와 다다이즘 창시하고 사랑 키워나가

다다의 연장가방 나무부조, 1920년

많은 예술가들이 전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독일 시인 후고 발과 그의 아내이자 시인인 에미 헤닝스, 루마니아 극작가 트리스탄 차라, 루마니아 화가 막셀 얀코, 독일의 시인 리하르트 휠젠베크, 화가인 한스 아르프와 소피 토이버 아르프가 모여 취리히의 슈피겔가 1번지에 ‘캬바레 볼테르’라는 예술인을 위한 선술집을 열었는데, 이곳이 다다이즘의 발상지가 되었다.

문학가와 미술가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며 파격적인 예술행위를 보여주었다. 리하르트 휠젠베크는 음성시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를 선보였고, 트리스탄 차라는 여러가지 언어로 지어진 시를 서로 다른 리듬과 음색으로 낭독해 기존시의 형식을 깨고 ‘동시적인 시’라는 실험적인 형식의 시를 발표했다.

한스 아르프가 후에 그녀의 아내가 될 소피 토이버를 만난 곳도 이곳이었다. 화가이자 조각, 건축, 직물 디자인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소피 토이버는 콘크리트 아트와 기하학적 추상으로 20세기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1915년 스위스로 이주한 그녀와 아르프는 뜻이 맞는 동료였다. 그들은 함께 다다이즘을 창시하고 사랑을 키워나가 1922년 결혼에 골인했다.

 

05_의식이나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그림 시도

말머리를 굴레로 잡고있는 몸통 보드에 유채, 부조

다다이스트들의 모임에서 아르프가 처음으로 선보인 콜라주 작업은 여러 가지 색종이들을 내키는 대로 찢어서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린 후 판지에 떨어진 모양 그대로를 풀로 붙인 작품이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콜라주의 시초로 당시로서는 세인의 상상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고, 이성을 배제하고 우연성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 기법은 후에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기법으로 자리잡았다.

‘콜라주’ (1916년), ‘우연의 법칙에 의한 콜라주’ (1917년)를 비롯한 여러 콜라주 작품들의 취지는, 1920년 시인 트리스탄 차라가 ‘다다적인 시를 쓰는 방법’에서 발표한 ‘예술 창작의 방법론에서 보여지는 우연성에 관한 글’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신문을 집어라, 가위를 들어라, 당신이 원하는 시의 길이만큼 신문의 기사를 선택해라, 그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단어 하나 하나를 오리고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어라, 잘 섞어라, 그 다음 잘린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라, 주머니에서 꺼낸 순서대로 단어를 베껴 써라, 그 시는 당신과 닮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매력적인 감성으로 가득한, 게다가 무지한 대중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무한히 독창적인 작가가 될 것이다.”

이 방법론은 다소 시니컬한 어조로 아르프가 카바레 볼테르에서 선보인 콜라주 작업의 중심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전적으로 우연성에 의존한 이 행위가 얼마나 우리의 선입견과 가치관을 부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지를….

계산과 의도를 배제하고 우연으로 선택되고 구성된 작품에는 어떤 의미나 상징, 메타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르프는 의식이나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그림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생각을 멈추고 무의식 속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오토매틱 드로잉 (자동 기술법)이다.

1916년 그가 제작한 ‘오토매틱 드로잉’이라는 작품은 의미 없는 선들과 부정형의 검은 형태로 이루어진 작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의미도 없고 아름다움이랄 것도 없는 이 작품은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으로, 무의식을 창작원리로 받아들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자동기술법으로 진화해 수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케 한 요람이 된 것이다.

 

06_우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결과, 채색부조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

숲 1916년

또한 아르프는 자연의 형태와 기하학적인 요소를 융합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냈는데, 회화와 조각의 중간지점인 채색 부조라는 형식이었다. 1916년작 ‘숲’에서 아르프는 일상적인 사물들과 재료를 사용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표현했다.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나무판에 여러 가지 모양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오려 채색을 한 후 무작위적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어떤 의도도 내포하지 않은 무의미한 형태들을 중복적으로 배치해 숲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제작된 ‘꽃과 망치’ 역시 유기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곡선과 직선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조각들은 자체의 두께를 가지고 있어 이들을 겹쳐놓았을 때 보이는 질감은 자연이 포함하고 있는 또 다른 우연성을 보여준다. 입체주의자가 평면에 입체의 모양을 구현시켰다면, 아르프는 캔바스라는 평면 위에 또 다른 오브제를 겹쳐놓음으로 그 자체로서 입체가 되게 한다.

무의식적으로 오려낸 판지 하나 하나는 그저 둥그렇거나 삐죽삐죽한 의미 없는 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을 채색된 나무판에 얹어 이리저리 배치하니 ‘숲’에서는 주홍빛 나무와 검은 바위, 푸른 잎과 핑크빛 꽃이 흰구름 아래 어우러진 숲의 이미지를 자아내고 ‘꽃과 망치’에서는 색색의 기묘한 형태들이 모여 위의 흰 조각이 망치로 보여지고 짙은 보라빛 형체가 꽃으로 보여지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우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결과이며, 채색 부조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이었다.

 

07_갑작스레 나타난 다다운동은 나타날 때처럼 갑작스레 해체

싹이 있는 알몸 청동조각

다다이스트들은 1916년 7월 14일 발표된 ‘다다선언문’에서 다다라는 단어의 뜻을 이렇게 말한다. “다다는 사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프랑스어에서 다다는 ‘장난감 말’을 의미합니다. 독일어에서는 ‘안녕’ ‘등에서 내려’ ‘언젠가 보자’라는 뜻입니다. 루마니아어에서는 ‘그래, 정말 네 말이 맞아. 바로 그거야’라는 뜻입니다.”

‘다다’라는 용어는 리하르트 휠젠베크가 휴고 발과 함께 사전을 펼치고 나이프를 떨어뜨려 그 자리에 있는 단어를 사용한, 전적으로 우연성에 의해 발견된 단어이다. 이것은 이성적인 계획이나 미학적 가치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다다의 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방법이었다.

다다는 그 이름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처럼, 체계적인 조직이나 사상을 갖추고 특정한 미술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다다이스트들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의 위선과 기만에 반기를 들고, 가장 파격적인 수단들을 동원해 존재하는 기존의 가치를 뒤집어엎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부르주아적인 시대의 흐름에 대한 반동으로 여러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베를린, 퀼른, 하노버, 파리, 뉴욕까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어 갔다.

1919년 독일의 베를린 다다가 결성되었고, 퀼른에서는 아르프, 에른스트, 요하네스 바르겔트의 전시회가 열렸다. 1920년대 초기에는 다다운동이 거의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퍼져나갔고, 1922년 파리에서 대규모 국제전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1924년 갑작스레 나타난 다다운동은 나타날 때처럼 갑작스레 해체되었다.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건축 등 예술 전반에 자리잡은 이 운동은 현대 예술 각각의 분야에서 각자의 예술활동을 통해 새로운 현대 예술사조를 탄생시키기 시작했다.

 

08_끊임없는 생성 에너지가 매끄럽고 금속적인 견고함 속에

오토매틱 드로잉

1926년 아르프와 토이버는 프랑스 시민권을 따고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를 오가며 생활했다. 그들은 따로 그들의 작업을 하거나 혹은 함께 협업을 하여 작업을 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동료이자 동반자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아르프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에서 신조형주의 건축물 디자인을 공동작업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1930년대 이후 아르프는 추상적 유기체의 세계로 진입한다. 동물, 식물, 구름등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추상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나뭇가지, 돌, 식물의 뿌리, 풀 등 자연의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녹여내곤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고찰은 마침내 기하학적 형태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형태를 창조한다. 그것은 초현실과 추상의 중간 형태의 유기적인 추상으로 근원적인 인간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둥글고도 매끄러운 비정형적인 형체들은 끝없는 탄생과 성장,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원시생물의 세포분열이나 정형화된 형체를 갖지 못한 아메바와도 같은 원초적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 끊임없는 생성의 에너지가 매끄럽고 금속적인 견고함 속에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

 

09_프랑스 남부 그라스로 이주, 예술인마을 만들고 예술활동

우연의 법칙에 의한 콜라주 1917년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토르소’는 유려하고도 섬세한 곡선으로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양쪽으로 뻗은 돌출 부위는 목이나 팔이라고 하기에는 동떨어진 형태이지만, 보는 사람은 어쩐지 그곳에 팔이나 목이 생략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가운데 깊숙이 패인 면은 여인의 등을 연상시키는데 동시에 양쪽으로 가볍게 돌출된 부분은 여인의 유방으로도 보인다. 가슴에서 엉덩이로 흐르는 선의 아름다운 굴곡은 여인의 매력을 나타내고, 자유를 갈구하는 듯한 포즈가 그 안에 잠재되어있는 생명력을 뿜어내는 것만 같다. 이 작품에서 생식을 나타내는 유방과 엉덩이는 강조되지 않았음에도 그 안에서 자연과의 조화에 의한 생성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활발한 예술활동을 하며 지나던 아르프 부부는 세계 제2차 대전 중인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기 직전 파리를 탈출해, 프랑스 남부 그라스로 이주해 예술인 마을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술활동을 계속해나갔다.

그러나 1943년 토이버가 취리히 방문 중 난로 고장으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아르프는 실의에 빠져 수도원에 들어가 4년동안 모든 예술활동을 중지하고 그녀를 애도했다.

그는 “그녀는 자신의 명확한 삶과 예술을 통해서 나를 바른 길, 아름다운 길로 인도했다”고 회고해 토이버가 그에게 미친 커다란 영향과 그녀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10_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위치 차지

콧수염 남자 보드에 유채

아르프는 1950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의 거대한 벽면 부조를 제작했고, 1954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나레 대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58년 유네스코 본부의 구리부조를 제작하는 등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는 미술 수집가인 마그리트 하엔바흐를 만나 재혼했는데 그녀는 1966년 프랑스 바제르에서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아르프재단을 만들고 유럽에 세 군데의 상설 전시관을 세워 그의 예술작품들을 보존하는 등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죽을 때까지 헌신하였다.

한스 아르프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현대미술의 획기적인 변화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오늘날 많은 후배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 위에 자유로운 사상을 위한 포석을 깐 그의 일생은 현대미술사에 없어서는 안될 위대한 업적으로 보여진다.

 

* 다음에는 17세기 바로크미술의 거장,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만나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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