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파괴에서 드러나는 신비한 감동

그림은 감각 또는 감성의 시각적 형태이며 시각적 표현의 무한성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글은 가슴 속의 말 즉,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구체적인 형상을 보여주기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리스 시인 호라티우스가 ‘그림은 말없는 시, 시는 노래하는 그림’이라 표현하였듯 문학과 미술은 감성표현에 있어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다.

 

01_키리코와 이상의 예술세계의 유사성

조르조 데 키리코 (Giorgio de Chirico, 1888년 7월 10일-1978년 11월 20일)의 ‘거리의 우울과 신비’와 이상의 ‘오감도’에서 보여지는 작품상의 유사성은 일상의 파괴와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숨겨진 존재의 이면을 추구한다는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감추고 만들어진 모습, 보여지는 모습에 익숙한 일상으로 가식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어느 한 순간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서 균열이 가고 쪼개진 거울에 비친 듯 일그러진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는 일상이라는 늪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순간은 예측 가능한 일상에서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가 들어오는 순간이다. 당연히 이런 낯선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잔잔한 일상은 평정을 깨버린 타인의 존재로 우리에게 불안하게 너울거린다.

그러나 일단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 속에 녹아 들게 되면 마음 속 일렁임은 시나브로 잦아들고 우리는 형체 없는 시간 속에 드러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키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신비’ 그리고 이상의 ‘오감도’에서 보여지는 일상의 파괴는 우리에게 그러한 복잡한 감정들을 딛고 심연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 즉,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해준다.

세익스피어가 운명을 바꾸는 마법의 ‘템페스트 (The Tempest)’에서 “꿈과 인간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라고 말한 것처럼 개인의 감정, 추억, 기억 등 일상의 작은 소재들로 새로운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작품세계는 어떤 형상이나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시켜 표현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창의성에 빛난다.  

회화와 시, 장르가 다르고 표현 방식이 다른 두 작품에서 표현되는 분위기의 유사성은 그래서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두 작품의 유사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화가와 시인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려 한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 1914년, 유화, 87*71.4cm)( ‘오감도 시제1‘ 1934

 

02_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작품세계

조르지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 화가로 형이상학적 회화 (피투라 메타피지카)의 창시자이자 대표적 인물인데 독일 낭만파 뵈클린, 크링게 등의 환상회화와 니체의 철학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11년 파리로 와 아폴리네르, 드렝, 블랑쿠시, 피카소와 교류하며 입체파에 접근했지만 독자적인 미학을 추구하고 형이상회화의 양식을 수립해 1917년 카를로 카라와 함께 형이상학파를 결성하였고 1918년 잡지 <발로리 프라스티지>를 통해 형이상회화 이론을 전개하였다.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1924년보다 훨씬 앞서 키리코는 초현실주의에서 보여지는 주요 대상들을 신비스럽고 독특한 화풍으로 회화에 끌어들임으로써 스스로 형이상학적 회화라고 이름 붙인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쳤다.

1918년 로마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수 차례 전시를 하며 달리,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키리코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없는 쓸쓸한 거리, 타워, 아케이드, 지중해식 건축물을 원근법을 강조하여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을 비일상적인 배열로 구성해 역설과 모순을 통하여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우리의 관습적 개념과는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물을 서로 결합시켜 신비감을 조성한다.

오가는 이 없이 텅 빈 적막한 광장, 미지의 세계를 향해 어디론가 떠나지만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 열차, 부조리한 공간에서 자신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는 대상물들은 시간이 정지된 듯 화석화되어 한없이 느려지는 우리의 감성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초월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뛰어넘어 잊혀질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주요 작품으로 사랑의 노래, 시인의 불안, 봄의 트리노, 거리의 신비와 우수 등이 있다.

( ‘사랑의 노래‘ 1914, 유화, 59*73cm)

 

03_이상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작품세계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다간 이상 (본명: 김해경 1910-1937)은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던 중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된 후 작품 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 1931년 일문시 (日文詩) 이상한 가역반응, 거울, 오감도 등의 초현실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발표하고 날개, 종생기 등의 의식세계의 심층을 탐구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1936년 절친한 화가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과 그 당시 유행하던 자유연애 끝에 결혼했으나 지병인 결핵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휴양 차 간 일본에서 숨을 거두었다.

훗날 변동림은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라고 말했듯이 이상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에서 벗어나 위대한 예술혼을 남김없이 불사른 채 영원히 존재하는 불사조가 되어 날아갔다.

일반적인 문법구조와 일상의 기호체계를 부정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초현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심리소설의 개척자로 평가 받는데 1930년을 전후해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의 흐름에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과 의식의 흐름을 문학으로 표현한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시는 감각의 착란,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36년 발표된 ‘날개’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무력하고도 자기해체적인 모습을 묘사하며 삶의 의미와 자아를 찾아 자유롭고 이상적으로 살기를 갈망하는 내용으로 그 전에 발표되었던 그의 시에서 보여지는 의식의 심층세계를 소설로 승화시켜 한국 최초의 심리소설로 인정 받았다.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 친구의 초상‘)

 

04_’거리의 신비와 우수에서 보여지는 초현실적 분위기

이러한 두 예술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유사성은 무엇일까? ‘거리의 신비와 우수’를 살펴보면 이 작품의 구도를 지배하는 것은 과장되고 어긋난 원근법이다. 왼쪽 흰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과 오른쪽 그늘진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이 어긋나 있는 이 이미지의 부조리는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 뒤로부터 드리워진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긴 그림자는 그늘과 어둠을 지배하며 또 하나의 그림자로 나타난 굴렁쇠를 굴리는 소녀를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것은 마치 가까이 다가오는 불안과 위협과도 같이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아이는 다른 세계에서 뛰어 들어와 사로잡힌 듯 정지된 채 이 화면 속에 갇혀있고 이 정지된 시간 속의 화면은 평화로운 듯 하지만 기이하고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이 한산한 거리와 건물, 열린 채 방치된 트레일러의 그림자 속에서 깊은 우울과 절대적인 공허를 느끼게 된다.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나 인물들이 부조화로 인해 달라 보일 때 우리는 낯설고 기이한 느낌, 마치 백일몽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05_’오감도에서 느껴지는 초현실적 불안감

1934년 7월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이상의 ‘오감도’는 총 15편의 연작시 형태로 제목부터 건축용어인 조감도를 조작해서 만든 조어인, 마치 까마귀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정적이고 불길한 느낌을 드러내고 있다.

시제1호는 “13인의 아해들이 도로를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길이 적당하오)”로 시작해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라며 계속 1인부터 13인까지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나가다가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는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고 아이들은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끝을 맺는다.

이 시의 분위기는 반복적으로 표현되어있는 ‘무섭다’라는 표현과 막다른 골목’이 주는 불길함과 공포이다.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질주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주어진 일상과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마치 주어진 현실을 외면한 채 돌아보지 않고 달리면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이….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골목이 막혔든 뚫렸든, 아이들이 질주하든 안 하든, 무서운 아이이든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이든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이 시에서 표출되고 있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결국은 그 곳에 존재한다는 막막한 심리적 정황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오감도 시제 1원본)

 

06_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화의 미학

이러한 막막한 심리적인 불안감은 역설과 모순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우리의 관습적 개념과는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물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불안과 신비감을 표현한 키리코의 ‘거리의 우수와 신비’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예술작품이 진실로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하며 논리와 상식은 여기에 방해가 된다. 세상에 불가사의한 것들이 없다면 달리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말한 키리코는 사물의 순간적인 현상에서 깊은 가치를 발견하였다.

형이상학적이라는 표현방식으로 사물의 표면 뒤에 숨겨진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있어 그의 대표작 거리의 신비와 우수, 예언자의 보상에서 보여지는 그리스나 로마를 연상시키는 대리석 조형물과 음영과 원근법이 강조된 건축물들, 아무 상관이 없는 주변의 대상물들은 작가의 심층적 주관에 의해 재편성되어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을 신비롭고도 불길한 느낌으로 전환시킨다.

그의 그림을 접한 비평가들은 “가장 사실적인 묘사기법을 사용해서 부조화를 창조할 때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기이하고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라고 찬양하였다

 

 

 

 

 

 

(예언자의 보상‘ 1913, )

 

07_새로운 내면세계를 표현한 그들의 위대한 예술세계

상징주의자 로트레아몽의 시에서 표현된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기이한 아름다움…”처럼 우리는 이 기묘한 아름다움을 키리코와 이상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된다.

건축교육과 시각적 예술이론을 공부한 건축가로서 이상이 갖고 있었던 조형감각은 그의 시에 나타난 구조와 의미에 시각예술의 시공성을 접목시켜 문학의 형식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초현실주의적 특질을 구현함과 동시에 기존의 질서를 과감히 탈피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여 스스로의 내면의 소리를 드러내려 한다.

‘오감도’ 연작을 마치며 작가는 “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라며 대중의 몰이해를 한탄했지만 이상은 그의 새 길, 새로운 예술의 표현을 향한 그의 열정으로 우리에게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키리코와 이상이 이야기하려는 인간의 내면세계는 일상성의 파괴에서 드러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고독, 정형되지 않은 공포이다.

그들은 의식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표현과 무의식의 매커니즘을 자신의 창작세계 에 도입해 고독과 우수, 불안에 차있는 심상의 풍경을 표현함으로써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확립하였다.

역설과 모순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우리의 관습적 개념과는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물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키리코는 그림으로, 이상은 문자로 그들은 새로운 표현세계를 이룩했고 예술세계에 대한 위대한 해석의 지평을 열었다.

 

* 다음 호는 시인 아폴리네르와 화가 마리 로랑생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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