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도 잘 놀아요

“둘이 가면 무슨 재미래? 나는 재미 하나도 없을 거 같아. 그야말로 가서 싸우지나 않고 오면 다행인 거지….” 지인들이 우리를 앞에 두고 종종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분들 주장(?)에 따르면 ‘평소 집에 함께 있는 것도 귀찮고 싫은데 왜 굳이 여행까지 둘이 가느냐?’는 논리인 겁니다.

하긴 한국에서도 정년퇴직 때까지 속된 말로 ‘쎄빠지게’ 일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이른바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얻어(?)먹는 ‘삼식이’ 신세로 전락한 남편들이 아내로부터 직간접적인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 시드니에도 그런 분들이 적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에이, 다른 집들은 몰라도 저 집은 안 그래.” 부부 둘이 여행을 가면 무슨 재미냐는 전체적인 여론에 한 선배지인이 용감하게(?) 반박을 하고 나섭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다. 아내와 저는 둘이서만 놀러 가도 싸우지 않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잘 지내고 옵니다. 물론, 저보다는 아내의 천사 같은 배려와 사랑 덕분입니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분명 저는 전생에 나라 하나쯤은 구한 듯싶습니다.

올해도 아내와 저는 둘만의 오붓한 여행을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곳에만 머물던 예전의 패턴에서 벗어나 오가는 과정에서 여러 곳을 들르고 여행지에서도 새로운 곳들을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팔곤 합니다. 집에서 미리미리 챙겨간 음식들로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우리가 좋아하는 낚시도 두세 차례 곁들입니다. 다행이 그때마다 어복이 따라줘서 싱싱하고 쫄깃한 회도 늘 빠지지 않습니다.

8월에는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230km쯤 떨어진 커드미라 (Cudmirrah)라는 예쁜 동네의 캐러밴 파크에서 3박 4일을 꿈같이 지냈습니다. 오가는 길에 들렀던 멋진 곳들에서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NSW주정부가 땅을 팔아먹어(?) Jervis Bay Territory가 돼버린 때문에 국립공원 애뉴얼 패스가 있음에도 13불의 입장료를 내고 다시 찾은 부데리 국립공원 (Booderee National Park) 탐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았습니다.

우리는 여행기간 중 하루를 헐어 ‘부데리 국립공원 완전정복’을 목표로 광활한 지역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수많은 야생 앵무새들이 우리의 손바닥은 물론, 어깨며 머리 위에까지 올라와서 정겨운 친구가 돼줬던 시간과 손위에 놓인 먹이를 집어먹던 캥거루들의 몽글몽글한 입술 촉감은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1860년에 만들어져 1889년까지 운용되다가 지금은 잔해만 남아 있는 Cape St George Lighthouse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부숴져 내린 등대 옆 전망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대형 혹등고래의 멋진 유영 모습에 취해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컬버라 비치의 펭귄헤드에서는 무리를 지어 흥겹게 뛰노는 돌고래 수십 마리에 또 한차례 정신줄을 놓았습니다. 아내와 저 단둘이었기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저기 한번 가볼까?” 또는 “저건 뭘까?” 하는 호기심에 3박 4일 동안 692km를 주행하면서 우리는 참 많은 곳들을 찾아 구석구석을 돌아봤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둘만의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치사하게 너희끼리만 다닐 거냐?’는 우리가 좋아하는, 우리를 좋아하는 선배지인부부 두 팀의 컴플레인(?)을 수용해 여섯 명이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고로칸 (Gorokan)이라는 동네에 에어비앤비 하우스를 얻어 3박 4일을 지냈습니다. 우리는 여행 기간 내내 여러 곳을 탐험하듯 뒤지고 다녔는데 살짝 어드벤처스러웠던(?) 샤크 홀 (Shark Hole)을 비롯한 열댓 군데의 여행지는 하나같이 잊지 못할 추억들을 선사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물론 ‘찌질한 둘만의’ 여행 또한 좋아하는 아내와 저는 모처럼 선후배 지인들을 따돌리고(?) 오늘부터 ‘조금 먼 곳에서의 조금 긴 여행’을 오붓하게 시작합니다.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모로 조금은 무리해서 만든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듬뿍 만들어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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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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