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춤추는 마리아

언제 보아도 마음이 편한 친구 마리아는 이민을 와서 만난 지 20 년 된 지기다. 그녀는 늘 지쳐있다. 오늘도 처진 어깨에 얹혀 따라온 그녀의 고단함도 함께 만난다. 그러나 외모와는 다르게 언제나 경쾌하고 유머스럽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기도로 하루를 연다. 뜰에 나가면 고운 자태를 뽐내는 꽃들에게 예쁘다고 눈길을 주고 오이와 호박에게는 고맙다고 속삭여준다.

조랑조랑 달려있는 포도와 감을 들여다보며 사랑스럽다고 말해준다. 가지치기한 뽕나무로 고춧대를 세웠더니 오늘 보니까 그 뽕나무에 움이 텄다며 뜰에 심으라고 연한 잎이 보들보들한 가지를 건넨다. 뽕나무니 곧 오디도 열리겠다는 내 말에 둘이 좋아 죽겠다고 웃었다. 별것 아닌데 우리는 작은 일에도 늘 소녀가 되어 깔깔댄다. 잘 웃는 나를 더 웃게 만드는 것 또한 그녀의 능력이다.

마리아가 속 터지게 마음이 괴롭고 힘겨운 하루를 보낸 날은 달빛 교교한 뜰에 나가서 ” 예수님, 성모님, 요셉성인님 보세요.” 부르며 신나게 막춤을 춘단다. 때론 고집통이라 미운 남편 뒤에 몰래 발길을 날리기도 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어 십자성호도 긋는다. 나의 개그우먼은 잘생긴 예수님 성화를 보면 가슴이 설레어서 잎이 무성한 화분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마주친단다. 덕분에 나도 미남분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부럽다.

그녀는 소박한 쇼핑을 즐긴다. “오늘 쇼핑했어. 마리아백화점에 갔었지.” 마리아백화점은 세인트 빈센트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Vinie이라 부른다. 누군가 여러 가지 물건을 세인트 빈센트 카톨릭단체에 기부하면 정리하고 쓸고 닦고 세탁, 다림질하여 곳곳에 자리한 비니에 진열하여 판매한다. 찾는 이들은 작은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이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쓴다.

호주사람들은 이곳을 잘 이용한다. 많은 봉사자들이 동네마다 있는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기쁘게 일한다. 예쁜 마음이 모여 있는 곳 이어서인지 비니는 특이한 냄새와 할머니 품 같은 훈기가 느껴진다. 그녀는 비니를 마리아백화점이라고 부른다.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성모님께 감사하며 쇼핑을 즐긴단다. 사실 비니는 시간을 초월한 다양함의 종합 전시관이기도 하다. 그녀의 센스와 자유로움에 자주 감탄한다. 그곳에서 구입한, 유용한 작은 물건을 나누는 여유로움에 놀라기도 한다.

마리아는 동물을 좋아한다.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는 이웃 할머니의 개를 데려와서 함께 산다. 듬뿍 사랑 받는 몰티스 릴리는 억세게 운이 좋은 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입천장이 보이게 소리 내어 웃는다.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정화시킨다. 들려오는 모든 이야기가 시드콤처럼 정겹고 아기자기 예쁘다. 그녀 삶의 힘들고 슬픈 사건들은 센스와 재치로 승화되어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는 구수한 교훈과 간접경험을 통한 성장으로 남는다. 이런 친구가 곁에 있는 것은 축복이다.

달빛 아래 막춤을 추어대는 마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다 혼자 킥킥 웃는다. 하느님을 고통으로 일그러진 일상이 아닌 작고 소박한 즐거움 안으로 초대하는 법을 배운 날이다. 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작은 별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조그마함이 진정 크게 다가오는 밤. 감사, 작은 감사로 충만한 밤이다.

 

 

글 / 장옥희 브랜디나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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