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안경과 모자

오랜만에 유명 식당을 찾아 멀리까지 외식을 나온 노부부가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차에 탔습니다. 행복한 기분으로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멋쩍은 표정으로 얘기했습니다. “여보, 어떡하죠? 내가 안경을 식당에 두고 왔네요.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차를 돌린 할아버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계속 투덜댔습니다. “아니,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식당에서 나올 때 빠트린 거 없나 꼼꼼하게 챙겼어야지… 늙은이 티를 내는 거야? 식당에서 벌써 한참을 왔는데 이게 얼마나 큰 낭비야? 기름낭비에 시간낭비에… 어이구, 내가 참, 답답해서….”

할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이 가까워지면서 할아버지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할머니가 차에서 내릴 때 할아버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여보, 식당에 가면 내 모자도… 좀 같이 가져와요.”

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에게서 받은 내용입니다. 그냥 웃어넘기기 보다는 평소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한테 무심코 범하기 쉬운 ‘작지만 큰 잘못’을 간결하게 지적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줄이 늘어지면 조금씩 감아서 팽팽하게 만들어줘야지. 멍청하게 그걸 그냥 놔두고 있으니 걸릴 수밖에 더 있겠어? 그거 한 번 끊어지면 10불도 넘게 든단 말이야. 어휴, 내가 답답해서 원….” 하긴 짜증이 날 만도 할 겁니다. 줄이 걸려 끊어지기라도 하면 돈도 돈이지만 찌와 바늘을 비롯한 채비를 새로 해야 하니 한밤중에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부인한테 멍청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투덜대면 상대방도 열을 받게 마련입니다. “아니, 내가 뭐 일부러 그랬나? 그거 좀 새로 매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성질을 부리고 난리래? 에이, 나 안 해! 치사해서 안 한다구!” 둘 사이의 티격태격이 계속됩니다.

만일, 그날 부러진 낚싯대를 손에 든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저를 향해 아내가 “아니, 어떻게 뜰채 하나를 제대로 못 갖다 대서 힘들게 잡은 걸 눈앞에서 놓치게 만들어? 아, 진짜, 짜증나…”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에 빠진 뜰채를 급하게 건져내고 낚싯대까지 부러뜨리며 몬스터급 갑오징어를 놓쳤을 때, 가장 억울하고 속이 상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을 겁니다. 하지만 아내는 쓰린(?) 속을 달래며 “괜찮아, 괜찮아. 다시 잡으면 되지, 뭐. 갑오징어 걔가 살 팔자였던 거야”라며 얼른 채비를 갖춰 다시 낚싯대를 던져 넣었습니다.

“토니씨랑 테레사 자매는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아. 가만히 보면, 둘이 서로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챙기려 먼저 노력하고 일도 알아서 나눠서 하니 부딪칠 일이 없는 거지.” 선배지인이 우리한테 종종 하는 얘기입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집에서도 제가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리고 있으면 어느새 아내가 정원가위를 들고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마당에 물을 주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아내는 뒷마당 텃밭을 가득 메운 푸름이들을 만나고 있는 식입니다.

안경을 식당에 두고 온 할머니를 타박하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모자가 떠올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요즘 같이 코로나19 때문에 부부가 집안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는 꼭 새겨둬야 할 덕목일 듯싶습니다.

우리 집 ‘둘기’가 우리 식구가 된지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져서 인지 녀석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박스를 제 집 삼아 잘 살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외박도 하지만 삼시세끼는 꼬박 챙겨먹고 아내와 저를 향한 친근감도 점점 더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녀석이 불렀는지 하얀 앵무새와 초록 앵무새까지 날아들어 함께 모이와 과자를 나눠 먹었습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식구가 자꾸 느는 것도 걱정이긴 하지만 찌질한 아내와 저는 뜻밖의 손님들이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코로나19
Next article꼼수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