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안긴 꽃

봄의 전령사들이 사라지기 전, 미건은 우리를 그녀의 집으로 초대했다. 학교에서 각자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는 우리 다섯 명은 그녀의 재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꽃들을 꺾어 각각 바구니에 담았다.

마치 어릴 적 흥분된 마음으로 했던 보물찾기 같았다. 보물을 찾기 위해 가든 구석구석을 꼼꼼히 보고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에 피었던 나팔꽃과 장미꽃 향기가 동시에 다시 피어났다. 둥그런 화단 속에 들어가 가장 좋아했던 핑크 장미꽃 앞에서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봄에만 환생하는 꽃들이 한아름 내 품에 안겼다. 딱 요맘때가 한철 인줄 알고 봄 꽃들은 저만의 향기를 절절하게 내뿜는다. 동시에 내 몸 안에서 잠자던 사랑의 세포들도 깨어난다. 입가에는 어느덧 주체할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장미, 아이리스, 릴리, 라벤다, 스노우 볼 등등 집안 여기저기 꽃 향기에 둘러싸여 어디에선가 마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래도 난 그들 향기에 취해 버렸나 보다.

미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집 크기에 놀랐다. 사과나무, 체리나무, 무화과 등 수많은 과실수들과 집을 에둘러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꽃들까지 작은 호수 같은 연못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오리들로 낙원이 되어 있었다.

장미꽃들의 종류와 색깔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꽃 종류만큼이나 그 향기도 다채로웠다. 언덕 위에 마치 그림같이 앉아 있는 집을 중년을 훌쩍 넘어 버린 나이에도 혼자서 의연히 유지하고 있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 절뚝거렸던 애완견 샘을 떠나 보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그녀의 모습이 한동안 안쓰러웠는데 다행히 또 다른 유기견을 데려와 자식처럼 돌보면서 이제는 그 강아지가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자주 갔던 큰 집 뒷산에 있던 한 소나무가 떠오른다. 비바람과 태풍을 견디어내느라 휘어지고 구부러져서 비뚤비뚤했던 나무… 하지만 그 소나무 끄트머리에 있던 잎들은 그 어느 나무보다도 푸르고 싱그러웠다. 보드라운 맨 살은 거친 소나무 껍질이 뒤덮고 있었다. 한없이 크게만 보였던 그 나무는 곧고 쭉 뻗은 다른 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어린 나의 시선을 끌 정도로 충분히 강렬했었다.

미건은 바로 그런 소나무를 닮았다. 결혼생활 중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이혼한 후 어린 딸을 혼자서 키워냈다고 한다. 지금은 어엿한 변호사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딸과 손주들을 만날 때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 소중할 것이다.

폭풍을 견디어낸 그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풍길 수 없는 다른 수준의 따뜻함과 배려를 품고 있다. 멋진 영국식 티파티를 열어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도 그녀가 즐겨 하는 것들 중의 하나다.

종종 파티에 초대 받아 얘기를 나눌 때마다 그녀의 부드러움과 함께 강인함도 느껴진다.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낸 그녀만의 승화된 힘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수다를 떨고 깔깔거리며 꽃들 속에 쌓여 있는 시간이 가져온 행복감은 참 특별했다. 어느새 내 마음은 몽글몽글 꽃 향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건 집에서 가져 온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지금 우리 집 식탁 위에 펼쳐져 달콤한 음악 속에 감미로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내게 특별했던 순간들,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 동안 외롭게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화병들을 찾아내어 꽃꽂이를 하면서 나눔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누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원하는 만큼 담아가라면서 커다란 바구니들을 우리들에게 건네주던 미건의 미소가 꽃 사이로 보인다. 그녀의 수고와 정성과 시간으로 키워낸 이 아름다운 꽃들… 풍성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미소로 바라본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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