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꿈은…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뭐, 저딴 인간들을 위해 쓴담?” 1969년,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을 짓는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저의 첫 마디였습니다. 중학생 때였으니 저는 어려서부터 삐딱하기는(?) 꽤 삐딱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말로는 나라며 국민들을 위한다면서도 허구한날 지들 밥그릇 싸움이나 해대는 사람들한테는 서울시청 옆에 있던 당시의 국회의사당도 과분했습니다. 툭하면 소리치고 멱살잡이를 하며 이불인지 매트리스인지를 깔고는 국회 안에서 철야농성을 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짓을 하게 만든 사람들이나… 다 거기서 거긴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국민들의 피땀으로 모은 세금으로 초특급 호텔(?)을 지어준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그 해 7월 17일 제헌절에 기공식을 갖고 6년 뒤인 1975년 8월 15일 광복절에 완공됐는데 초호화시설에 입주한 그 사람들이 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가 어렵사리 청산됐을 때도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나라나 국민, 민주주의보다는 여전히 지들 밥그릇과 권력을 위해 몹쓸 짓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서로 지가 잘났다고, 지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섰다가 ‘죽 쒀서 개 좋은 노릇’도 수없이 해댔습니다.

수많은 민주투사들의 피로 지켜온 민주정당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군부독재에 뿌리를 둔 두 당과 합쳐버리는 만행도 있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3당 합당의 야합이 이뤄지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반대를 외치다가 건장한 장정들에게 들려나가던 의롭고 외로운 초선 국회의원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애초에 정치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훗날 행정고시나 외무고시에 붙어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게 저의 어릴 적 꿈,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올바른 길을 가려 해도 이상한 사람들 밑에서 그들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그 길 또한 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뀐 꿈이 기자 혹은 교사였는데 일면 교사가 저한테는 더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한때 섬마을 외딴학교 교사를 강하게 소망하기도 했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고 오랜 세월 그 일을 하면서 ‘기레기’ 소리를 안 듣고 살았다는 사실은 참 다행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정치인들은 죄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요즘 한국정치판 돌아가는 걸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참담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무리 정치인들의 답변 3단 콤보가 ‘아는 바 없다. 그럴 리 없다. 한번 조사해보겠다’ 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본인 입으로 한 말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딱 잡아떼는지…. 특히 요즘 같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찌 그런 거짓말과 어거지, 뒤집어씌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하긴 그 사람들의 ‘대빵’이 절대 아니라고 하니 그 밑에 있는 ‘쫄따구’들이 그걸 뒤집는다는 건 100퍼센트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때문에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억지주장을 펴는 그쪽 사람들을 보면 몹시 화가 나다가도 연민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판에 있는 소위 공인이라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더더욱 입 조심, 행동 조심을 해야겠지만 본의가 됐든 실수가 됐든 잘못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쿨하게’ 사과하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게 그리도 어려운 모양입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세기의 명언(?)에 이어 ‘날리면’이니 ‘새끼면’이니 하는 조롱까지 받아가며 거짓과 억지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풍자만화를 그린 여고생을 두고 게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그럴 자격도 안 주어졌겠지만 정치판 혹은 그 사람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는 위치의 공무원을 안 택한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섬마을 외딴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지냈다면 ‘지금만큼 머리털이 많이 빠지지는 않은, 좋은 선생님으로 살 수 있었겠다’는 강한 아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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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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