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퓰리처상을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미국의 소설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읽었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 농촌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번드론 가족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59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열다섯 명의 내면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술기법이 다양하고 상징과 은유로 사건을 묘사한다. 나는 글을 읽는 동안 소가 음식을 되새김질하듯 글을 거듭거듭 반추하며 나의 이해력을 높여보고자 애썼다.

가난한 농부 앤스 번드런의 아내이자 다섯 남매 (4남 1녀)의 어머니인 애디는 중병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있다.

아내의 죽음을 방관하는 엔스는 땀을 흘리면 죽는다는 이유로 평생 일을 안하고 살아온, 무능하고 책임감이 없는 남편이다. 아내 에디는 딴 남자와의 불륜으로 셋째 아들을 낳음으로써 이런 무능한 남편에 대한 복수심을 푼다. 맏아들 캐시는 앓아 누운 어머니의 방에서 내다보이는 앞마당에서 어머니 장례에 쓸 관을 짜는 데에만 몰두한다. 둘째 아들 달은 게으른 괴짜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달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키가 크고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셋째 아들 주얼은 가족의 일보다는 자기의 말(馬)에 더 큰 애정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는 말이 어머니다. 엄마가 상자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17살 된 딸 듀이 델은 레프와 관계 끝에 임신을 하여 어머니의 간병과 장례에 정성을 쏟지 못한다. 다섯째인 바더만은 토막 나 생명을 잃은 물고기에 죽은 어머니를 비유한다.

애디가 집 근처의 가족 묘지를 마다하고 친정이 있는 제퍼슨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자 번드런 가족은 노새가 끄는 마차에 관을 싣고 장례 여정에 오른다. 여정은 참으로 처절했다 어머니의 관을 싣고 범람한 강을 건너는 것. 건너야 할 두 개의 다리가 장마로 유실되고, 마차를 끓어야 할 노새도 노도 같은 강물에 잃었다. 겨우 여울목을 찾아 강을 건넜다. 뜨거운 여름 날, 어머니의 관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여 지나다가 잠시 머문 마을 모트슨에서도 쫓겨날 판이다. 달은 어머니의 관을 운구하며 겪는 난관으로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길레스피의 농장에서는 어머니의 시체를 관과 함께 태워버리려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반나절 거리인 40마일을 열흘이나 걸려 갖은 고난 속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례 여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가족 7명뿐 만이 아니라 이웃, 목사, 의사,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한 독백을 털어 놓는데, 모두 죽은 애디에 대한 애도보다는 각자 자기 자신의 생활 목적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번드런 가족의 기괴한 장례 여정을 따라가며 내 상식과 통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을 만날 때마다 감춰진 사실을 유추해보며 눈 앞을 가리는 장막을 걷어 내보려 애썼다.

작품해설 속으로 들어가본다. ‘기독교인 미국의 소설에서 40이란 숫자는 성경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신의 진노가 땅에 미치는 노아의 홍수가 40일이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헤맨 것이 40년이었다. 또 예수가 전도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헤맨 것이 40일이었다. 고난을 상징하는 40이란 숫자는 아기가 어머니의 배 속에 머무르는 40주간이란 숫자와도 맞아떨어진다. 반나절 거리인 40마일을 열흘이나 걸려 여행하여 비로소 땅속의 평화를 얻은, 죽은 어머니와 가족들의 여행은 광야에서 헤매는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P307)

한 가정을 태생시키고 보살피던 어머니란 존재가 죽음과 함께 쉽게 잊혀지는 정황에 어처구니가 앞선다. 아내를 땅에 묻은 아버지는 며칠 후 딸 듀이델의 돈으로 새 이빨을 하고 후처를 데리고 나타난다, 캐시는 새어머니가 가져온 축음기를 기뻐하고, 듀이델과 바더만은 좋아하는 바나나를 먹는다.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그들 모두의 상실감을 쉽게 잊고 일상을 영위한다. ‘다 그런 걸까? 다 그런 거지 뭐!’ 체념 속에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서글픔과 허무감이 밀려들었다.

애디의 죽음을 나의 죽음에 투영시키며 그래서 우리는 절대성을 찾아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글 / 최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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