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지 말입니다…

에이든 하나만 있을 때는 툭하면(?) 우리 집을 찾곤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에밀리가 태어나고서부터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만 데리고 움직이는 것과 둘을 챙겨야 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도 없던 어느 날 오후, 딸아이가 큰맘(?) 먹고 두 녀석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우리 집에만 오면 신이 나는 에이든, 훈이는 그날도 예외 없이 뒷마당 여기저기를 쉴새 없이 휘젓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유독 엄마를 밝혀(?) 아직까지도 저는 물론 아내한테 조차 곁을 안 내주는 ‘까칠공주’ 에밀리, 봄이는 줄곧 지 엄마한테만 붙어 있습니다. 우리한테라도 오면 그 동안이라도 지 엄마가 좀 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기 띠를 한 채 계속 에밀리를 안고 있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에 안쓰러움이 가득합니다. 저렇게 계속 있다 보면 어깨는 물론 허리까지 심하게 결리고 아플 거라는 걱정입니다.

그네에 앉아 지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딸아이가 어느 순간 얕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지치고 힘들었던 두 아이 육아의 피로가 따사로운 햇살에 말랑말랑 녹아 들었던 모양입니다.

31년 전… 딸아이의 돌잔치가 있던 날입니다. 100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 시간을 위해 아내는 몇 날 며칠에 걸쳐 음식들을 준비했고 돌잔치 당일에도 북적대는 손님들 틈에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커다란 식당이나 펑션센터 같은 데를 빌려 돌잔치를 했겠지만 그때는 오롯이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습니다.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던 아내의 코에서 갑자기 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렸고 아내는 얼른 한쪽으로 달려가 휴지로 코를 막은 채 돌아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내의 뒷모습을 누군가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귀하게 길러 시집 보낸 딸이 한 켠에 서서 몰래 코피를 막고 있는 모습을 본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날 아기 띠를 한 채 고개를 꺾고 쪽잠에 빠져든 딸아이를 보면서 평소 어떠한 경우든 별다른 얘기 없이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던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 건 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때야 이런 이유와 저런 핑계로 육아에 거의 신경을 안 쓰고 지냈지만 요즘은 부부가 함께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시절 제가 몸담았던 여성지 <여원>의 슬로건이 ‘아내를 사랑하라’였습니다. 하지만 남들한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열심히 외치면서도 정작 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나보다는, 우리 가족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고 챙겼던 ‘찌질한’ 저였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얼마 전, 산행을 하면서 “토니씨는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야”라는 얘기를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평소 아내를 끔찍이 챙기고 위해 주는 것처럼 포장돼 보이는 바람에 많은 여성들이 “당신도 토니씨처럼 좀 해보라”며 바가지를(?) 긁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창 아내와 아이들 곁에 있어줬어야 할 시기에 저는 이 세상 누구 못지 않게 ‘남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의 소홀함과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지금 코리아타운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 두 명 있습니다. 제 딸아이도 내년쯤에는 워킹맘 대열에 복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이 키우는 일과 집안일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는, 세상 어느 슈퍼맨보다 강하고 멋진 워킹맘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아울러 지금에 와서야 “그때는 몰랐지 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와는 달리, 일찍 철이 든 젊은 아빠들에게도 힘찬 격려와 성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DA 승인 A to Z
Next article마스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