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의 역할

건강하기 위해서는 역할에서도, 기능에서도 융통성 필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서 집을 비우곤 했습니다. 시드니로부터 시작해서 멜번, 브리즈번에서 세미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학기가 이제 잘 시작되었구나, 라고 느끼며 일상생활로 다시 복귀를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모든 세미나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지난 주일 (항상 세미나를 위해 떠나는 날) 오후에 이번에는 엄마가 세미나로 떠나지 않는다고 하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01_늘 희생하고 봉사해도 배우자가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으면

특히 그 중에 기뻐한 사람은 넷째 아이인데 이유는 필자가 집을 비울 때 자신이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동생들에게 도시락을 싸게 하고 시간을 맞추어 일찍 일어나 동생들을 깨우고 동생들이 해야 할 일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이 아이는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심리적 부담감으로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고 그리고 나서 돌아온 부모님의 칭찬을 듣는 아이는 힘들면서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에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 책임감을 많이 가지고 있던 착한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서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도 자신의 가정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책임감을 많이 가지고 많은 기능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러면서 자신이 배우자의 역할까지 전부 다 감당하는 것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는 공주처럼 또는 왕자님처럼 모시고 자신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관계가 시작되었지만 자신은 늘 희생하고 봉사해도 배우자가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게 섭섭함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수고와 희생이 인정을 받으면 고생을 해도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음으로 거기에서 실망과 섭섭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엄마는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자녀를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 않고 수고했지만 전혀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희생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몰라주는 아들만 원망합니다.

 

02_마음 깊은 곳에는 인정과 보상 바라는 마음 있었던 것

이 엄마도 선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희생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인정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양은 다르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람의 사랑에는 조건이 많이 붙습니다. 처음 시작점은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면 그래서 나중에는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한 쪽에서 너무 과기능을 하는 일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한 쪽은 주기만 하고 한 쪽은 받기만 하는 것은 관계를 역기능적 (dysfunctional)이게 합니다.

항상 희생적이기만 한 엄마가 아들에게 경계선을 긋고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의 행동을 멈추고 아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과기능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앞에서 언급한 그 가정에는 변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엄마에게 무조건 기대하기보다는 엄마가 해주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받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 과기능을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이 과기능을 함으로 배우자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쩌면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계속 유지시켜나가는 부정적 역할을 내가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또는 식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어쩌면 내가 조금만 간섭을 줄이고 덜 애쓰고, 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가족치료 (family Therapy)에서 역할 (roles)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의 한 사람이 전통적인 성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때 역할이 경직될 수가 많습니다. 남자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과 남자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아주 분명합니다.

 

03_역기능 가정일수록 역할 경직되고 바꿔지지 않아

이러한 전통적 성역할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의 경험과 사고가 역할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형태로 형성이 되어 있다면 그 역할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게 삶이 조정되게 됩니다.

가족치료에서 역기능 가정일수록 역할이 경직되고 바꾸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영웅’의 역할을 하고 한 사람은 ‘문제아’의 역할을 하고 한 사람은 ‘희생양’ 또는 ‘마스코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족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가정을 지탱해 나가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나만의 ‘역할’은 어린 시절에는 나의 삶을 유지하는 좋은 전략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역할만을 감당하려고 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 나의 역할에 맞추기 위해 또 다른 역할을 강하게 행사해야 한다면 그 가정은 경직된 또 다른 건강하지 못한 역기능적 가정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역할에서도 기능에서도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과기능을 하고 있는 사람은 때로는 조금 덜 기능하면서 대신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일을 하고 저 기능하는 사람은 일을 조금 더 하여서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가족 안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늘 우리가 적절한 양만큼의 기능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파서 돌봄이 필요할 때 우리는 때로 과기능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융통성입니다. 서로가 필요할 때 서로의 역할이 조정될 수 있고 그것이 소통이 될 때 가정은 건강하게 세월이 흐르면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게 됩니다.

 

 

정신건강 교육의 중요성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서미진 (호주기독교대학 교수·호주한인생명의전화 원장)

 

 

 

Previous article손 여사와 함께 하는 ‘솔잎그룹’
Next article학원을 이기는 독학 영어회화 1 Unit 10 –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