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여행의 상관관계?!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2주 남짓 방치(?)됐던 우리 집 텃밭은 그야말로 황량 그 자체였습니다. 한창 푸르렀던 채소와 꽃들이 비실대는 사이에서 잡초들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 팔뚝만 하던 오이들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여기저기 주렁주렁 빨갛게 달려 있어야 했을 딸기들도 죄다 검붉은 모습으로 타 들어 있었습니다. 반면, 텃밭과 화단을 제 세상처럼 뒤덮고 있는 잡초들은 얄밉게도 꽃까지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잡초와의 전쟁… 한꺼번에 해치우기에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지금도 정리를 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상황이 많이 나아져 어른 손가락보다 훨씬 큰 풋고추와 영롱한 보랏빛을 자랑하는 가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맥 없이 축 늘어져 있던 깻잎도 어린아이 얼굴만한 크기로 다시 씩씩해졌고 작은 군단을 이루고 있는 무화과들도 건강한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헉헉대며 가쁜 숨을 몰아 쉬던 다양한 꽃들도 환한 얼굴로 여기저기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9년 반 전 이 집에 이사 와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참 세련되고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은퇴 전까지 은행에서 고위급 관리자로 일했다던 그는 누가 봐도 잘 생긴 외모에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오프로드 여행과 캠핑도 많이 즐겼던 듯싶었습니다.

그러던 그도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튼튼했던 다리가 새(?)다리처럼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절뚝거림에 이어 얼마 전부터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상태가 더 안 좋아졌는지 일주일 넘게 병원에 들어가 있습니다. 말수는 적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그의 파트너는 벌써 몇 달째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들 옆집 호주인 부부를 보면서 그리고 주변의 선배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건강’을 생각해봅니다. 텃밭의 채소와 화단의 꽃들처럼 우리의 건강에도 분명 꾸준한 관리와 돌봄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모처럼 한겨울에 한국 땅을 밟으면서 가장 먼저 했던 걱정이 “너무 많이 추우면 어쩌지?”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인조인간’ 시절의 강인함이 많이 남아 있어 어지간한 추위에는 끄떡도 안 하지만 아내는 8년전 한국의 강추위에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이후부터는 겨울철 한국 방문을 자제해왔는데 다행이 이번에 우리가 머무는 동안의 한국은 영상을 오르내리는 따뜻한 날씨를 선사해줬습니다. 또 하나의 걱정이었던 미세먼지도 우리 곁을 비켜 지나가 우리는 그야말로 한국에서 편안한 시간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캄보디아 여행에서 우리 패키지팀 7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어이, 가이드 양반, 좀 천천히 갑시다!”라는 말을 연발하다가 결국 베트남 티톱 섬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꼭대기 등 높은 곳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올해 제가 갖고 있는 두 개의 화두는 ‘건강’과 ‘여행’입니다. 건강의 중요성은 그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고 그 건강이 우리와 함께 해줄 때 여행도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어디를 걷든 힘들다는 느낌은 안 받고 있지만 지난해부터인가 왠지 근육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하체는 젊은 시절 즐겼던 싸이클링 덕을 아직도 보고 있지만 상체는 그렇지 않은 듯싶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짐(GYM)에서 근육운동을 해줘야 한다”며 1년 넘게 저를 설득해온 아내의 요구에 이제는 못 이기는 척 응하려 합니다. 매일매일 수영으로 다져진 탄탄한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려면 저도 이제는 조금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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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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