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 (김고은)과 봉길 (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풍수사 상덕 (최민식)과 장의사 영근 (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 (惡地)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 (破墓)가 시작되는데…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지난 일요일, 개봉 32일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의 시놉시스입니다. 이 영화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하기 며칠 전, 우리도 톱라이드 이벤트시네마에서 파묘를 봤습니다. 긴말이 필요 없는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하며 러닝타임 134분 동안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세대를 대표하는 톱 배우들의 선 굵은 연기가 단연 돋보였는데 특히 대살굿 장면을 맛깔 나게 보여준 김고은의 연기는 말 그대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장재현 감독도 “김고은 배우가 그날은 미쳤었습니다. 그냥 하는 것도 힘든데 그 와중에 표정 하나, 어깻짓 하나… 이거를 화면에 반만 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순간순간을 담기에 급급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개봉 초기,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좌파영화’라는 낙인이 찍힌 덕분에 기대이상의 흥행효과를 가져온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파묘는 처음부터 민족주의와 항일코드를 담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날짜도 3.1절을 일주일 남짓 앞둔 2월 22일로 맞춰놓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윤봉길, 오광심, 박자혜 등이 모두 실존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번호판들이 0301, 1945, 0815인 것도, 이순신 장군 얼굴이 새겨진 100원짜리 동전이 등장한 것도 하나같이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영화포스터 또한 한반도 지도 형상을 하고 있고 ‘파묘’라는 글씨체는 김좌진 장군의 필체를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 또한 일제강점기 한국의 아픈 역사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 제작에 5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유명하다는 무속인, 풍수사, 장의사들과 함께 2년 가까이를 부대끼며 공부도 하고 답사도 해가면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장하는 묘를 열 다섯 군데나 따라다니며 현장감각(?)을 익혔습니다.

그냥 귀신영화, 무당영화 정도쯤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파묘는 이처럼 철저한 준비에 의해 탄생된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더하자면 ‘MZ무당’으로 일컬어지는 김고은, 이도현 두 배우에 대한 캐스팅도 영화의 성공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탰을 것 같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멋쟁이 가죽재킷을 입고 다니며 대살굿을 할 때 요즘 세대들 사이에서 핫한 ‘가시 번’ 헤어스타일에 하얀색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뛰는 김고은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만일 이들 두 무당도 MZ세대가 아닌 늙수그레한(?) 배우들로 캐스팅을 했더라면 파묘의 세대를 아우르는 흥행효과는 덜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쇠말뚝 역할을 한 일본귀신을 찾아내 불태우는 피날레는 파묘가 지닌 항일코드와 민족주의를 완성시키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시드니에서 상영되고 있는 파묘는 영어 자막과 중국어 자막을 담고 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한글 자막도 빼놓지 않고 있어 관객들의 편의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살짝살짝 스포일러가 됐을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내용들을 사전 팁으로 갖고 파묘를 보시면 영화의 완성도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실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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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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