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일탈

어렸을 때는 ‘한국의 가을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답다’고 배웠지만 호주에서 살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됐습니다. 그날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고 높았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의 색깔은 말 그대로 ‘쪽빛’ 그 자체였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날씨 또한 그 동안과는 달리 따뜻해 봄 날씨를 연상케 했습니다. 방학을 맞아 여기저기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두 살쯤 돼 보이는 아기가 기저귀를 찬 채 잔디 위를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너무너무 예뻤습니다. 주차장 근처 피크닉에어리어에는 바비큐를 즐기는 팀들이 여럿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한 켠에서 소시지 굽는 냄새가 유독 입맛을 돋웠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우리 시드니산사랑이 모처럼의 일탈을 가졌습니다. 매주 걷던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로얄내셔널팍 안의 와타몰라 (Wattamolla)를 출발지로 정한 겁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두툼한 옷에 바람막이까지 입었지만 트레킹 시작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모두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물론, 한 시간 남짓 로얄내셔널팍까지 운전해서 가는 시간도 이미 충분한 힐링이 돼줬습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을 벗삼아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에는 또 다른 활기와 즐거움이 들어있었고 길옆으로 펼쳐지는 검푸른 바다는 가슴이 탁 트이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리틀 말리비치 (Little Marley Beach)까지 1만 6000보를 걷고 우리도 여러 팀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단체주문 한 도시락을 까먹으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고 평소 몸에 안 좋다는 누명(?)을 달고 사는 믹스커피의 짙은 향은 최고의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와 진배 없었습니다. 내친 김에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은 어디를 가든 무조건 원정산행을 한다’입니다. 어디든 그렇기는 하지만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는 호주생활은 자칫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삶이 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최장 1년 반 동안의 임시거처로 정한 지금의 집이 이전에 살던 집과는 너무도 많이 달라서 늘 갑갑하게 생각해오던 차였습니다.

한때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다녔던 낚시도 긴 시간 땡땡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묵직한 손맛을 주던 연어, 밤하늘을 은빛으로 수놓던 갈치, 한번 걸렸다 하면 최소 7킬로그램은 돼서 우리를 당황케 만들던 괴물 갑오징어와도 정말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냈습니다. 무슨 일이든 탄력을 받았을 때 멈추지 말고 꾸준히 달려야 하는데 한번 맥이 끊기면 게으름과 타성이 더해져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 저는 와타몰라 비치를 보면서 21년전 생각이 나서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 비자문제도 여전히 답답한 상태인데다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왼쪽에 마비 비슷한 게 와서 클러치를 짚고 다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다녀야 한다’는 지인의 설득에 아내와 저도 와타몰라 비치로 낚시를 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위낚시는 안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일행들과 떨어져 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비치에 꽂아둔 낚싯대 하나가 거세게 흔들렸습니다. 아내가 낚싯대와 씨름을 하는 동안 환자(?)였던 저는 돗자리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나머지 낚싯대 하나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거세게 휘는 게 보였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 저도 모르게 쏜 살같이 달려가 낚싯대를 붙들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고 웃음이 납니다.

그렇게 그날 우리는 연어 몇 마리와 플랫헤드 그리고 브림 여러 마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바위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보다도 비치에서 훨씬 더 많은 물고기들을 챙겨 ‘참 희한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즘이야 어디서든 그때만큼 물고기가 잘 안 잡힌다고는 하지만 조만간 21년전의 추억을 되살릴 ‘와타몰라 낚시 원정’을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맛 있는 도시락과 믹스커피도 꼭 챙겨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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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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