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누구 없소?

8월 13일 저녁, 우연히 한국 YTN 뉴스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세상에 저런 한인회장도 있다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아니 전 세계 한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YTN은 올해로 이민 60년을 맞은 브라질 한인사회 1세대 인물기획 첫 순서로 ‘어려운 한인들의 건강을 보살피며 헌신을 통해 한인사회 기초를 다진 이영만 의사’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한인들의 브라질 공식이민이 시작된 건 1963년 2월이었고 이영만 씨 가족도 이민역사 초기인 1965년에 배를 타고 브라질로 이주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 남아프리카를 거쳐 무려 두 달이나 걸린 여정이었지만 부푼 꿈을 안고 떠나온 길이었습니다.

이영만 씨는 한국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했지만 브라질에서 의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를 새로 취득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20대 후반에 시작한 포르투갈어 공부와 함께 그가 의사면허를 따는데 걸린 시간은 3년이었습니다. 이후 이영만 씨는 한인타운에 병원을 열었지만 진료를 하고 약을 지어주고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이영만 씨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교민들이 다 가난했어요. 어느 누구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병이 생겨도 병원을 찾을 형편이 안됐지요. 나 또한 그런 사람들한테서 돈 받을 입장도 못됐고… 내가 의사이니 고쳐줘야지 어떡해요? 그러니까 고쳐줬지요”라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너무 어려운 사람이 많았고 우리 영감은 그걸 알기 때문에 없는 사람은 그냥 치료해주고 약도 없으면 여기서 사다가 그렇게 하면서 주사도 놔주곤 했는데 솔직히 우리도 많이 어려웠지요.” 부인 송윤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그는 하루에 120명씩 환자를 보곤 했답니다. 돈 대신 음식을 받거나 여러 해 뒤에야 진료비를 받으면서 이영만 씨는 ‘브라질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한인사회의 신뢰를 두텁게 쌓으면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한인회장도 여러 해 맡았습니다. 당시 4만불을 선뜻 기부하며 모금운동에 앞장서 한인회관을 세우고 초창기 한인회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박태순 전 브라질 한인회장은 이영만 씨에 대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이민사회 전체가 이민사회의 어머니 역할을 하신 분이 그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오랜 시간 옆에서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모두 지켜본 아들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상파울루대 의대 교수인 아들 동원 씨 역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동원 씨는 “열네 살 때부터 아버님 수술을 따라다니며 수술조수를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사람들이 포르투갈어도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지요. 아버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낌 없는 도움과 봉사를 계속하셨구요”라고 했습니다.

브라질 한인사회에서는 브라질 이민 60년의 산 역사이자 한인사회가 든든히 서기까지 아낌없이 베풀고 봉사해온 이영만 씨를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동포의 참 의미를 오롯이 실천해온 사람’으로 존중하며 그의 삶을 후세들이 이어받아 꽃피우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브라질 한인사회 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분에 관해 100퍼센트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만 해도 한인사회에서 추앙 받기에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탄핵, 비상대책위원회, 공금횡령, 경찰조사 등의 낯뜨거운 단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새로운 한인회장을 찾고 있는 시드니한인회에도 이영만 씨와 같은 참된 인물이 나타나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거기,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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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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