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오페라하우스에서 NSW 주정부 주최로 추도식 거행

10월 16일, 호주 환경운동의 대부 격인 이안 키어난 (Ian Kiernan, AO) 클린업본부 총재가 암으로 별세했다는 호주 언론들의 뉴스특보가 이어졌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난 11월 16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NSW 주정부 주최로 그분의 업적을 추모하는 추도식이 거행됐다.

 

01_그의 수명을 초월해 미래 향해 계속 이어질 것

장례는 이안 키어난 총재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이미 치러졌고 외부의 조의금은 클린업본부에 기부금으로 보내고 화환 등은 일절 사양했다 한다.

그러나 환경단체 커뮤니티의 요청과 NSW 주정부에서 그분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가족 측을 설득해 이뤄진 주정부 차원의 추모식을 이날 가지게 됐다. 이에 환경단체 진우회도 특별 초청돼 영예롭게도 500석 중 25석을 배정받아 그 추모식에 참석하게 됐다. 지난 10여년간 한인환경단체 진우회와 그분과의 교분이 참작됐던 것이다.

추모식은 오전 10시부터였지만 30분 전에 이미 주요 인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전 총리 폴 키팅, 봅 혹 전 총리 부인, NSW 주총리 등과 각계 커뮤니티 단체인사들이 우리보다 먼저 착석하고 있었다. 이안 총재가 평소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맨 앞자리 3-4줄을 꽉 채우고 앉아 있었으며 오전 10시, 추모식이 시작될 때는 500석이 꽉 차 보였다.

강당 단상이 검정색 배경으로 엄숙함이 느껴지고 양쪽이 NSW주 꽃 (Waratah)을 중심으로 야생화들로 장식돼 화려한 화환진열을 배제하고 부쉬 속의 한 면을 떠다 놓은 뜻한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주게 배열됐다.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두 애보리진이 디저리두 악기와 안무로 추모의 연가를 선보여주고 나서 사회자 (Mike Munro, AM / journalist)가 개회 선언과 내빈인사로 추모식이 시작됐다.

이어서 원주민의 추장 격인 애보리진 (Uncle Allen Madden) 원로가 이 땅을 깨끗하게 보존해준 그분의 공로를 기린다는 추모연설을 마친 후 모두 일어나 호주국가를 합창했다.

NSW 주총리가 그분의 환경정화운동에 정부의 감사와 공로를 치하하는 추모 연설을 했고 이안 총리의 가족사 기록영상과 그의 열정적인 해양 항해장면과 해양쓰레기 제거작업, 호주클린업 활동 등 다양한 인생여정 기록을 영상으로 감상했으며 다음 무대에 피지안 공동체 노래를 선보였다.

추모인사로 이안 총재와 클린업 활동을 함께 시작한 공동창사자 Kim McKay AO/CEO of Australian Museum는 이안 총재의 환경정화에 대한 열정과 끈기로 오늘날의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며 그의 생애는 그의 수명을 초월해 미래를 향해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그의 정신력을 추모했다.

이어 호주클린업 본부 대표이사 테리안 여사의 추모사가 이어졌고 이안 총재의 미션인 E=1 (Environment=First)을 앞줄에 착석한 학생들의 반복 복창으로 보여줬다.

핌블여학교 신부 (Rev. Lorenzo Rodriguez)의 기도에 이어 이안 총재의 두 여식 (Sally & Pip Kiernan)이 아버님의 사랑과 정신을 이어 받아 아버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겠노라며 이번 추모식을 준비해준 주정부와 여러 커뮤니티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호주의 유명한 가수 (Jimmy Barnes AO)의 열창과 그의 피아노 반주 (Clayton Doley) ‘Working Class Man’를 들려주고 나서 사회자의 마침 인사로 1시간여의 추모식을 마쳤다.

 

02_이안 키어난 총재의 생애

이안 총재는 1940년 10월생으로 시드니 하버 근처에서 자라면서 비치에서 수영과 낚시, 세일링을 즐기며 성장했다. Scots College & Armidale School in Northern NSW를 졸업한 후에서 건설분야에 일했고 이후에는 역사적인 건물들의 보수작업에 전문성을 지닌 특수사업을 시도하며 큰 부를 축적했다.

1971년에 요트를 구입해 배우고 익혀가며 요트 빌더로 요트사업을 주로 하며 해양 요트 세일링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8개월에 걸쳐 단신 요트로 오대양 일주를 했다는 기록은 그의 생애에 경의적인 것이었다.

그의 나이 44세에 호주 대표로 세계요트대회 (BOC solo around the world Yacht Race)에 출전 호주 신기록을 남겼다. 그 후 40여년의 요트 항해여정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세계 요트경기를 마치고 카르비안해협 (Sargasso Sea in the Caribbean)으로 돌아오는 중 섬 같은 크기의 엄청난 쓰레기 군을 발견하고 경악을 하고는 시드니항에 돌아와 시드니항 해변에 산적한 쓰레기를 보고 주위 친구들을 설득해 커뮤니티 행사로 클린업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1989년 1월 8일 가칭 ‘Clean Up Sydney Harbour’ Event를 가졌다

이것이 그의 클린업운동의 첫 삽이 됐다. 그날 행사에 4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는데 다음해에 National Clean up Australia Day 행사로 확대해 당일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이안 총재는 호주에서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로 향하는 지구 살리가 운동을 위해 각 나라를 다니며 클린업 활동을 전개해 1991년에 유엔기구 (UNEP)에 등록해 ‘Clean up the World’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80여개 국가에서 3000만명이 동참했고 매년 증가를 거듭, 이제 120여 국가에서 400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동참하는 글로벌 환경운동 (Global Clean up World)으로 발전했다.

아래와 같은 공로표창 (훈장)들이 거목의 삶을 반증하고 있다. 1991년 OAM (Medal of the Order of Australia, 1993년 UN Global 500 Award for the Environment, 1994년 Australian of the Year, 1995년 OAM (Officer of the Order of Australia, 1999년 World Citizenship Award, 2001년 Centenary Medal 등이 그것이다.

 

03_이안 키어난 총재의 정신

첫 번째로,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의 생애에서 보듯이 그의 바다에 대한 애착과 세일링에 열정을 바쳐가는 과정에서 탁월한 추진력과 판단력, 도전정신이 함축된 강인한 성품을 지닌 지칠 줄 모르는 황소 같은 뚝심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처음 카르비안해협에서 발견한 쓰레기 섬을 바라본 순간 섬광 같은 놀라움의 충격을 느끼고 시드니로 돌아와 즉시 행동에 임한 그 판단력과 추진력이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품으로 인해 글로벌 환경운동 (Global Clean up)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의 정신은 클린업 환경운동가의 정신력을 일깨워주는 롤모델이다.

두 번째로, 책임감과 지도력이다. 아무리 열정이 있어도 그것을 받쳐주는 조직력 (인적자원)과 경제적인 희생정신이 없으면 그 열정을 불사르기 어렵다. 그의 헌신적인 경제적 지원과 그것으로 인적자원을 넓혀 조직력을 강화하는 지도력을 솔선수범하는 그의 정신은 환경운동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세 번째로, 소탈한 인간미를 지닌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성품이다. 그는 한때는 억만장자로 부를 누리며 정계에도 진출을 시도해볼 만도 한데 평범한 소시민으로 때로는 가족과 함께 때로는 초등학교 학생들과도 때로는 진우회 같은 소수 이민자 커뮤니티들과 어울려 소시지 빵을 나누고 농담을 즐기며 클린업 활동을 함께 해온 할아버지 같은 너그러운 소시민상을 보여줬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채널7과의 인터뷰에서 “이안 총재는 해양에 대한 열정을 지닌 모두가 좋아하는 호주정서가 담긴 진정한 자연인 호주인 (Original)이다. 그는 ‘쓰레기를 손수 줍는 것이 우리가 쓰레기를 줍는 것을 정부에 바라기보다   우리가 해야 할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응수한 호주를 사랑하는 진정한 호주인이다”라고 극찬했다.

네 번째로, 정의감이다. 1994년 호주의 날 (Australia Day) 기념행사에 참가한 영국 찰스 황태자의 달링하버 기념식장에서 모의 총에 의한 저격사건이 발생했을 때 둘째 줄에 앉아 있던 이안 총재가 돌고래 같이 돌진해 몸으로 막는 모습이 TV에 방영된 것은 그의 순발적인 정의감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시드니 서민들의 대중교통의 큰 역할을 하는 시드니 페리의 비 합리적인, 특수층을 위한 브렌드 네임 (Blended Ferry McFerryFace) 사용에 맞서 합리적인 서민의 편으로 되돌리는 역할 (Sydney Ferry name Campaign)을 한 것은 정의로움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노학의 학구파이다. 그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연에 더욱 심층적으로 접근하고자 학문의 문을 두드렸다. UNSW 대학원에 환경운동 연구 논문을 제출하는 노학의 학구파였고 거기에서 도출한 근본논리로 E=1 (Environment = One, First) / 환경문제가 우리의 최우선 선결문제가 됐다. 그가 학문적으로 도출한 E=1의 미션은 각 환경단체와 중고등학교로 전파되고 있다.

 

04_진우회와의 관계

진우회는 15년전 (2003년)에 시작했고 UNEP Clean up the World 운동에 가입한 것은 2006년이었다. 이 글로벌 클린업행사는 매년 9월 셋째 주말로, 진우회는 이 행사에 여러 소수민족 커뮤니티들을 초청해 파라마타 강변 클린업행사를 거행했다.

이안 총재가 진우회 행사에 처음 온 것은 2008년이었고 그 후에도 매년 행사에 동참해 한국인의 근면성과 환경에 대한 열정을 높이 평가하며 격려를 해주곤 했다. 그의 한국인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한 예로, 이안 총재는 가족과 클린업본부 CEO를 대동하곤 했는데 늦둥이 외아들 Jak Kiernan에게 한복을 입혀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행사에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는데 이것이 그분의 마지막의 말씀이 됐다. 올해 9월에 가진 행사에서는 이안 총재가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따님 Pip Kiernan을 보내 격려의 말씀을 전해줬다.

우리 진우회 앞에 늘 큰 거목으로 여겼던 그분을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그분의 실체는 사라졌으나 그분의 정신은 우리 마음 속에 깊이 각인돼 그분이 이루고자 하는 글로벌 환경운동에 사명감을 배가해 더욱 그분의 열정을 이어가도록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글 / 김석환 (진우회 회원·Austin.putn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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