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성 의식 해방시키고 손에 잡힐 듯한 쾌락의 절정 맛보게 해

낡은 전통과 새로운 도전이 혼재된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유럽을 휩쓸던 데카당스 (탐미적 퇴폐주의)와 아르누보 (뉴 아트)정신을 아우르며 대담한 주제와 현란한 색채, 혁신적인 화면 구성으로 이루어진 크림트의 작품세계는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과 장식적인 세부묘사로 우리를 매료시키는데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의 억눌린 성 의식을 해방시키고 살아 숨 쉬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손에 잡힐 듯한 쾌락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01_삶의 부조리, 생로병사 등 어둡고 염세적인 주제 상징적으로 표현

그는 유럽에서 태동하는 다양한 예술사조와는 달리 평면적으로 표현되는 비잔틴 건축에 사용된 모자이크 회화기법과 일본화의 영향을 받은 동양의 이국적 아름다움을 화면 안에 녹여내 자신만의 새로운 표현 양식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그니처 칼라인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의 조합으로 몽환적인 관능의 세계를 아름답고 황홀하게 표현해내었다.

1862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귀금속 세공사였던 아버지에게서 선천적인 예술 감각을 이어받아 14세부터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모자이크 기법과 이집트의 부조양식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익혔다.

졸업 후에는 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상업미술 회사를 차려 벽화, 간판, 실내장식 등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1887년 빈의 초대 연극전용극장인 브르크극장 천장화를 그려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 천장화로 인해 1888년에 황제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와 명성을 얻게 되어 26세 젊은 나이에 떠오르는 예술계의 신인으로 출세의 길에 올랐다.

이후 빈대학교 강당의 천장벽화 철학, 의학, 법학을 그렸지만 철학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우주 속 은하수를 부유하는 여인, 아이, 노인 등 혼돈 속에 떠도는 나체의 군상이 뒤엉킨 이 그림들은 삶의 부조리와 생로병사와 같은 근본적인 인간의 불안 등 어둡고 염세적인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당시 아카데미즘에 젖어있던 많은 이들이 작가의 천재성을 이해 못하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02_전통적인 미술과 인습에 의한 고정관념에 대항 빈 분리파 창설

그러나 이 작품은 파리의 만국 박람회에 출품해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 파문을 일으켰고 클림트는 다시는 정부 주문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 구습에 젖은 빈 아카데미즘과 새로운 예술, 아르누보의 대결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철학 1900, 유화

크림트가 활동하던 1897년 당시 유럽의 미술사조는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불안과 허무 등 세기말 풍조가 만연한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새로움을 추구하고 전통적인 사실주의와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의 사슬에서 벗어난 인상주의, 상징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 여러 사조가 일어나고 파리에서는 아르누보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클림트도 빈에서 전통적인 미술과 인습에 의한 고정관념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창설하였다.

‘빈 분리파’는 종합예술을 지향하여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여러 예술가가 참여하여 분리파 전시회를 개최하고 전시관도 지어서 ‘시대에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 미술과 삶의 상호교류를 추구했다

그는 1902년 분리파 전시회에서 34미터의 거대한 벽화 ‘베토벤 프리츠’를 제작하는데 사회의 몰이해와 편견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워 불후의 명곡들을 남긴 베토벤을 기리고 9번 교향곡 ‘합창’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이 작품은 그의 예술의 정점이자 그가 원하던 종합예술의 실현이었다.

빈 분리파 전시관에 영구 전시되어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베토벤 프리츠’는 이후 그의 작품의 주를 이루는 황금빛과 모자이크와 같은 장식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바야흐로 크림트의 ‘황금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03_키스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감성표현 극대화 시킨 작품

클림트의 작품세계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초기는 사실적 표현의 신화나 역사화의 벽화, 실내장식, 초상화 등이 주를 이루고 두 번째는 그의 예술의 절정을 이루는 ‘황금시기’라 불리는 황금빛으로 가득 찬 평면적 양식의 시기인데 ‘베토벤 프리츠’ 를 위시해 ‘키스’나 ‘다나에’ 등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마지막으로 황금은 최소화되고 그 자리에 일본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녹여내 동양의 신비로움을 담은 작품을 그린 시기로 나뉜다.

이번 호에서는 그의 많은 아름다운 작품들 중에서도 그의 예술세계의 절정을 이루고 그가 추구한 에로티시즘이 황금빛 환타지아로 가장 잘 표현된 세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베토벤 플리즈 1902 유화

1908년 그려진 ‘키스’는 그가 항상 추구하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감성 표현을 극대화 시킨 작품이다. 꽃밭 속의 두 남녀가 황금빛 후광에 둘러싸인 채 끌어안고 있다.

클림트에게 있어 황금빛은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졌는데 이 작품에는 금박을 사용해 더욱 화려하고 강렬한 화면을 이루었다. 남성을 상징하는 사각의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옷과 여성을 상징하는 부드러운 칼라의 원형 이미지의 옷은 인물들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부각시키고 아랫부분 꽃밭의 다양한 색깔들이 장식적인 이미지를 더해주고 있다.

고개 숙인 남자의 목에 걸쳐진 여인의 희고 가녀린 손목 아래 살짝 구부러진 손끝에서 그녀의 수줍고도 설레는 기대감이 느껴지고 여인의 얼굴을 받치고 있는 남자의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고스란히 가슴 속에 내려앉을 것만 같다.

 

04_클림트 에로티시즘의 극치 보여주는 다나에

아스라이 감은 여인의 둥글게 휜 눈 꼬리에는 감미로움이 묻어있고 목 언저리에 와서 부딪치는 열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의 입술 위로 스치는 것 같아 한 입 베어 물면 상큼한 과즙이 터질 것만 같은 여인의 입술에 시선을 내린 남자의 열망 어린 눈길이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클림트의 평생의 연인이자 영원한 뮤즈였던 에밀리 플뢰게와의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그려졌다고 하는 ‘키스’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매달려 입맞춤을 기다리는 여인과 그 위로 몸을 숙이고 여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가는 남자의 열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두 입술이 닿을 듯 아찔한 거리를 두고 끈적하게 늘어지는 시간 속에 스치듯 내려앉으며 맞춰오는 입술의 말캉한 감촉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마음을 간지르는 달콤한 선율이 화면 안에 떠도는 것만 같다.

오른쪽 끝에 표현된 절벽은 외롭고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에게 뿌리를 뻗어 의지하고 마침내 한 몸이 되는 연리목과도 같이 두 사람의 겹쳐진 꿈 사이에는 현실의 어떠한 방해도 들어갈 틈이 없어 우리는 그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황금빛 환타지아에 속절없이 빠져들어 사랑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키스 1908, 유화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그려진 ‘다나에’는 클림트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신이 외손자 페르세우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아르고스의 왕이 두려움에 자신의 딸을 철탑에 가두어 아무 남자도 만나지 못하게 했지만 아름다운 다나에에게 반한 제우스 신이 황금비로 변해 동침을 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주제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화가들이 다나에의 누드화를 그렸지만 클림트만큼 관능적으로 절정의 순간을 묘사한 화가는 없다는 평가이다.

 

 

05_억눌렸던 여성성이 사회적, 시대적 변화에 의해 개화하는 것 표현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정절의 족쇄 속에서 순종과 절제의 나날을 보내던 순결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처음으로 사랑이 주는 쾌락을 경험하고 환희에 떠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화면에 담은 그의 예술성은 기존의 누드화에서 볼 수 없었던 구도와 황금빛 폭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클림트는 이 작품을 이색적으로 정방형 캔버스에 그렸는데 아마도 그녀가 갇혀있던 철탑의 감옥을 표현하려 한 것 같다.

캔버스가 꽉 차게 웅크리고 있는 다나에의 포즈는 이 좁은 곳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고 싶은 욕망을 안으로 감춘 채 현실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나에 1907-1908, 유화

쏟아지는 황금비를 맞이하는 여체의 풍만한 허벅지와 구부러진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 나른하게 감은 눈과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한숨과도 같이 스며 나오는 만족과 욕망 사이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하고 붉게 상기된 볼과 함께 황홀한 쾌락의 절정이 손에 잡힐 듯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인의 허벅지 사이로 쏟아지는 황금비는 관능과 동시에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도 표현된다. 남성성은 구석의 조그만 흑색 직사각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화폭을 꽉 채운 여체가 그 동안 억눌렸던 여성성이 사회적, 시대적 변화에 의해 개화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화적 소재와 황금색의 탁월한 표현으로 클림트의 ‘황금 시기’의 절정을 이룬 작품의 ‘다나에’는 에로티시즘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의 나락과 퇴폐적인 시대 말 적 분위기에 여인을 사랑하고 여체에 탐닉했던 클림트의 성의식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다.

 

06_유디트의 내면, 치명적인 성적 매력 통해 팜므파탈 이미지로

1901년 그려진 ‘유디트 1’의 원제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고 금색의 사용이 두드러진 클림트 황금시기 초기의 작품으로 화면의 대부분이 황금빛으로 채워졌고 모자이크와 장식적 패턴이 강조되어 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 유디트가 유다를 침공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만취해 잠든 적장의 목을 베어 탈출함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해서 그려졌는데 사실 유디트는 조르조네, 티치아노, 카르바조, 젠틸레스키등 르네상스 시대부터 많은 화가들이 주제로 삼아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기존의 화가들이 유디트를 고고하고 숭고한 성녀로 묘사하고 영웅적인 이미지를 직접 드러내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장면 등을 통해 사건 중심으로 표현한 데 비해 클림트는 유디트라는 인물의 내면을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통해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묘사하려고 했다.

유디트 1901, 유화

아래로 비껴보는 오만한 시선과 입가에 서린 만족한 미소, 속이 훤히 보이는 옷의 벌어진 앞섶, 대담하게 드러난 가슴과 배꼽은 적장의 목을 딴 여인의 표정이라기보다는 격렬한 정사 뒤에 오는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있는 것 같다.

여인의 내면에 잠재된 성적 본능과 요부의 이미지를 유디트와 결부시켜 성스러운 여인의 퇴폐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한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의 치명적인 매력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는데 반해 그녀가 움켜 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화면 구석 컴컴한 어둠 속에서 미미한 존재감으로 드러냈다.

두꺼운 황금 목걸이, 금박을 입힌 가운, 배경으로 처리된 금박의 모자이크 등 화면을 가득 채운 황금빛은 20세기를 맞아 점차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물질과 에로티시즘으로 빚어낸 욕망의 변주곡, 황금의 환타지아이리라.

 

07_화가는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림으로 모든 걸 말하겠다”

여성에 대한 성적 관심을 가지고 성욕이 삶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클림트는 관능과 성적 욕망을 회화의 주제로 삼고 권력의 상징인 황금색을 관능의 색으로 바꿔 표현함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상징주의적 요소는 시대적인 흐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가 표현하려는 여성상에 요부인 동시에 어머니라는 대조적인 상징성을 동시에 부여해 어머니에 대한 기존 관념과 새로운 시대를 나타내는 자아실현과 독립적인 여성상을 한 화면에 표현한 것 같다.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 유화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그림과 연애에만 전념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예술과 쾌락이다” 라며 많은 연인들을 두었지만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의 이해자, 영원한 뮤즈 에밀리 플뢰게만이 그의 진정한 사랑으로 죽음의 자리에서까지 그녀만을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능의 욕구에 충실한, 여체에 탐닉한 에로틱한 사랑에서 채울 수 없는 허기를 에밀리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완성 시킨 것이 아닐까?

그는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했으며 주변의 비판에도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 비평가가 아니다. 그림으로 모든 걸 말하겠다” 고 묵묵히 작품으로 자신을 보여주었다.

일생에 걸쳐 많은 작품들을 남겼지만 ‘키스’나 ‘다나에’ 그리고 ‘유디트’는 그의 몽환적 에로티시즘을 황금빛 환타지아로 아름답고 황홀하게 표현한 가장 위대한 작품들일 것이다.

 

* 다음 호는 르네 마그리트의 신비한 초현실적 세계로 만나겠습니다.

 

글 / 미셀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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