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참회록? #9312022-07-23 22:51

참회록?!

 

일도 좋고 회사도 중요하지만 나는 자기가 우리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딴지를(?) 거는 일이 없었던 아내는 그때도 이렇게 이야기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19952, 저는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저의 젊음과 열정을 쏟아 부었던 회사에서의 컴백 요청과 유명세는 없었지만 나름 탄탄하고 돈도 많이 주는 회사에서의 스카우트 제의….

 

고민 끝에 저는 컴백을 택했습니다. 23개월 전 불의의 부도로 침몰 위기에 처했던 회사를 전 사원이 똘똘 뭉쳐 4개월여 동안 맨몸으로 기사회생시킨 후 하중을 줄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배에서 내렸던 인원 중 하나였던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옛 핵심멤버가 절실히 필요하다던 회사는 어쩐 일인지 이내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달 후에는 나아지겠지, 이번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지겠지하며 1년 반을 버텼지만 결국 19968, 회사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월급도 한푼 못 가져오며 회사 살리기에 매달려 있는 찌질한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두 아이까지 다섯 식구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했던 아내는 이런저런 부업들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그 같은 결정을 내린 저를, 자신에게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생을 시키고 있는 저를 단 한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우리 힘으로 애써 장만한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남의 손에 넘겨주던 날도 아내는 그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일을 위해서라면 새벽도, 한밤중도 가리지 않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회사나 취재현장에 나가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은 저였습니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 뒹굴기에 바쁘다(?) 보니 다정한 남편, 자상한 아빠와도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회사 동료, 선후배들이 이끄는 술자리에는 왜 그리도 자주 끌려(?) 다녔는지돌이켜보면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산더미입니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뜻이다라는 우스갯소리는 딱 저를 놓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효자 남편과 사는 아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21년 동안 성격도 만만치 않은 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아내의 힘듦을 찌질한 저는 그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레사는 좋겠어늘 신랑이 곁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챙겨주니 얼마나 좋아?” 가끔 주변사람들이 아내를 향해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조용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지만 곁에서 듣는 저는 가슴이 뜨끔합니다. 옛날에 지은 죄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제가 매주 쓰는 칼럼에서 종종 아내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애처가 혹은 좋은 남편으로 투영되고 있지만 젊은 시절의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잘못함, 미안함, 찌질함을 뒤늦게나마 회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아내에게 조금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인 겁니다.

 

임마, 그래도 내 덕분에 해외여행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잖아. 고마워, 안 고마워?” 가끔씩 술잔을 부딪치며 찌질했던 시절의 미안함을 뻔뻔함으로 대신하려 들면 아내는 살짝 눈을 흘기다가 이내 깔깔대고 웃습니다.

 

맨땅에 헤딩 식으로 온 남의 나라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게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저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준 바보 같은 아내에게 조금씩 조금씩 더 잘해줘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봅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