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택시운전사’를 만나고… #9082022-07-23 22:40

택시운전사를 만나고

 

전라도 새끼들이 먼저 우리를 죽이려 했다고!” 홍섭이는 그야말로 눈을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악을 썼습니다. 순간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살기 같은 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805월의 광주가 피로 진압된 지 얼마 후,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우리 친구 몇몇이 우리 집에 모였는데 그 자리에 공수부대 하사로 광주에 투입됐던 홍섭이도 함께 했습니다.

 

광주 사람들은 모조리 폭도였고 빨갱이들의 조종을 당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먼저 농기구며 총칼을 들고 군인들을 죽이려 해 자기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그와는 그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고 이내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그도 어딘가에서 오늘을 살고 있을 겁니다. 문득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홍섭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니?”

 

위르겐 힌츠페터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로 805월 광주항쟁을 전 세계에 알린 그를 지난 일요일 오후 37년 만에 만났습니다.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마음도 저처럼 위르겐 힌츠페터,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던진 택시운전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광주시민들과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jtbc ‘뉴스룸손석희 앵커의 앵커브리핑을 통해 그날의 광주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모래시계를 만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벌써 20여년 전이 됐습니다. 지난 95년 당시 드라마 모래시계귀가시계라고 불렸던, 이른바 국민드라마였지요. 그런 드라마를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그리도 날 선 평가를 했을까? ‘모래시계는 아시다시피 한 고향에서 자란 친구들이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겪는 파란만장한 개인사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비열한 깡패두목 즉, 나쁜 배역이 쓰는 말투는 전라도 사투리였습니다. DJ는 그걸 지적한 것이었지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머리 속에 주입돼왔던 지역색이라는 것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무서운 것, 소위 사실성이란 걸 살린다는 이유로 매스미디어는 고의든 실수든 왜곡을 자행하고 그렇게 생산된 왜곡된 인식은 또다시 사실성을 확보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한국사회의 특정지역은 정서적으로 고립돼왔습니다. 그것의 역사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너무나 지난할 정도로 말입니다. 수준 낮은 정치가 만들어낸 한국사의 비극이라 할 것이고 그 정점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음을 우리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80년의 신군부가 광주에 풀어놓은 가공할 무기들입니다. 같은 민족을 상대로 준비했다는 무기들이라 믿을 수 있을까…. (뉴스화면에는 실탄 130만발, TNT 450파운드, 세열수류탄 4890, 66mm로우 74, 20mm벌컨포 1500, 클레이모어 180개가 떠있습니다.)

 

신군부 세력이 아무리 부인해도 그들은 80년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광주와 전라도를 차별하고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그들의 인식 속에는 전라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국 정보당국의 문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베트콩처럼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위에는 이미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광주항쟁은 7일간의 고립 끝에 풀렸지만 지난 37년간 광주는 여전히 편견 속에 갇혀서 비틀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됐습니다. 마치 광장 이전에 우리가 겪었던 시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혼이 비정상인 국민과 정상인 국민, 세월호 참사 앞에서 단식하던 사람들과 피자를 먹던 사람들로 나눠져 있던 그 시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DJ도 모래시계를 용서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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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