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아, 나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지… #8852022-07-23 22:30

, 나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지

 

코리아타운은 먼저 전화를 걸거나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광고영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광고주들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간혹 광고를 새로 내기 위해서나 광고 컨셉 의논이 필요해서 연락이 올 경우 그리고 드물게 방문 수금을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제가 직접 나섭니다.

 

이번 주는 유난히 광고주 혹은 예비(?)광고주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던 한 주였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곳이 많으면 조금 바빠지기는 하지만 일면 광고주들과의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반갑고 좋기도 합니다.

 

70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의욕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계시는 A 사장님은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십니다. “그땐 토끼풀도 먹었어요.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총칼에 의해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것도 봤고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가시지를 않아요. 그래도 철없는 우리 꼬마들은 국군은 물론, 인민군 탱크 포신에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놀곤 했었지요….”

 

일제시대에서부터 6.25전쟁, 4.19혁명과 5.16쿠데타, 5.18광주항쟁 그리고 이번의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까지국가적으로 불행한 일들을 지켜 봐온 그분의 우국충정은 뜨겁고 깊었습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도 잦았던 분이라 간혹 비밀스럽기도 하고 야하기도 한 이야기들까지 듣다 보니 점심식사도 거른 채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고국을 떠나 멀리 남의 나라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이 서로 반목하는 일 없이 잘 화합했으면 좋겠다는 그분의 말씀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저녁시간을 비워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일 수도 있는 그분의 삶 이야기를 좀더 들어봐야겠습니다.

 

호주에서 17년째 살고 있지만 어찌된 게 영어는 갈수록 무서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영주권을 받느라 5주 동안 IELTS 야간반에서 머리를 쥐어뜯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어찌어찌 기준점수 5.0보다 높은 평균 6.5를 받아 여유롭게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는데 영어에 대한 울렁증 내지 공포증은 날로 더해만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영어로 해결해야 할 새로운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이 두 건이나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후덜덜긴장이 돼도 겉으로는 한껏 당당하고 쿨한 척그래도 제법 잘 해냈습니다. 기특하게도….

 

? 저 한국 분 맞아요.” 어이쿠실수의 연발입니다. 늘 자리에 계시던 인자한 미소의 B 사장님 대신 그날은 낯선 20대 여성이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장님 안 계시느냐?’ 했더니 그 여성은 영어로 자동차 등록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런외국인이구나싶어 됐다는 표시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저쪽에서 사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함께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저는 저 분이 한국 분인 줄 알고 한국말을 했는데 한국 분이 아니시더라구요했더니 ? 저 한국 분 맞아요했던 겁니다.

 

스스로에게 한국 분이라는 표현을 쓴 그 20대 여성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사장님의 딸내미였고 아빠를 도와주러 나왔다가 저 때문에 한국 분해프닝을 연출하게 된 겁니다. 우리는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었습니다.

 

이민 온지 40년이 넘은 그 사장님은 여전히 한국 쪽도 적잖이 잃고 호주 쪽도 완전치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민자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주변인의 삶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비슷비슷한 모양입니다.

 

돌아오는 길거리의 교통표지판이 이미 오래 전부터 죄다 시청앞, 광화문, 압구정동, 삼성동, 서초동으로 읽혀지고(?) 있지만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 나 지금 호주에서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드는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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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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