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산행, 그 기분 좋은 중독 #8812022-07-23 22:28

산행, 그 기분 좋은 중독

 

가스버너 위에 올려진 코펠 안에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두부를 뭉텅뭉텅 썰어 넣은 후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던 친구녀석 입에서~” 소리가 나옵니다.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숟가락을 들고 우르르 달려들고 한바탕 전쟁이(?) 벌어집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흰쌀 밥에 김치찌개, 거기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소주 몇 잔…. 두말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땀 흘리고 정상에 올라 사내놈들끼리 해먹는 한끼 식사는 언제나 수십 가지 반찬들이 올라오는 진수성찬 못지 않게 훌륭했습니다. 가끔씩은 그 맛에 이끌려 어린(?)시절 우리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김 기자, 김 기자!”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김 기자! 김 기자! ! 김태선! 어디 가? 얼른 이리 와 앉아!” 아무리 그래도 정상까지는 올라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에 일행들 틈에 슬그머니 섞여보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저를 놔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도봉산 입구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옆 악동들(?) 틈에 끼어 앉고 맙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둥글 넓적한 돌판 위에서는 이미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습니다.

 

, , , , 한 잔씩 쭉 들자구.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라 그러고 우리는 신나게 달려보자구!” 강민우 부장의 선창에 이규철 기자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게요. 저는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걸 왜들 저렇게 힘들여 올라가는지….”

 

호탕한 웃음소리가 계곡을 가득 메우고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술판은 다른 사람들이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됩니다. 워낙 술이 센 사람들이라서 눈빛 하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판은 거기에서 걷어지지 않습니다.

 

등산로 초입에 줄지어 늘어선 도토리묵에 파전, 막걸리를 파는 집들은 그야 말로 참새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입니다. 어쩌다 보니 술이 제법 센 친구라는 인식이 박힌 저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늘 그런 식의 등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산행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산행모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속해 있는 시드니산사랑사람들은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630분에 시작되는 우리의 산행은 중간에 짧은 휴식을 두 번 가진 후 820분쯤 반환점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 준비해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기분 좋은 커피 한잔도 곁들입니다.

 

건강에 관한 이야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 작금의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40분 정도 나누고 우리는 내려갔던 길을 되돌아옵니다. 역시 두 번의 짧은 중간휴식을 가진 후 처음 출발지로 올라오면 오전 11시쯤이 되고 그걸로 우리의 산행일정은 모두 마무리 됩니다.

 

만일 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여차해서 그 다음 자리까지 이어진다면 하루를 다 쓰는 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정리를 해도 낮 12시가 채 안돼 있기 때문에 토요일 하루를 정말 알차게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아껴뒀던 시간들은 가끔씩 국내 또는 해외 원정산행으로 이어지고 멤버들의 화합을 위한 단합대회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3년 넘게 매주 걷는 코스이지만 고비고비마다 헉헉대는 건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날아갈 듯 개운한 기분이 되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는 늘 귀찮고 힘들지만 네 시간여를 산과 함께 하며 갖게 되는 최고의 행복감그건 분명 기분 좋은 중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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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