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11분 #7682022-07-23 21:18

11

 

~!” 아내 품에 안겨있던 아기고양이 해삼이가 수영장 펜스 사이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강아지 골든리트리버 애기한테 입을 크게 벌리고 이런 소리를 냈습니다.

 

8년여 전, 해삼이와 애기의 첫 만남은 그렇게 황당한 모습으로 이뤄졌습니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돼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조막만한 녀석이었지만 낯선 상대를 만나자 있는 힘을 다해 경고와 위협을 가했던 겁니다.

 

강아지는 반갑거나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열심히 치지만 고양이가 꼬리를 심하게 흔드는 건 뭔가 못마땅하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표시입니다. 순둥이 애기는 처음 보는 아기고양이가 반갑고 귀여워 한껏 애정표시를 한 거였을 텐데 정작 해삼이는 불쾌감 내지는 경계심을 느꼈던 겁니다.

 

해삼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크기가 딱 제 주먹만 했고 녀석은 옷 속으로 제 가슴 속을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얼마 안가 배신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한 사람, 아내만을 추종했습니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의 어깨 위로 뛰어올라 아내와 함께 움직이는가 하면 거실이든 안방이든 뒷마당이든 언제나 아내만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저는 그런 해삼이에게 졸졸이그리고 껌딱지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해삼이는 아내와는 이런저런 얘기도(?) 잘 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의 무릎 위에 올라가서는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내려올 줄을 모릅니다. 외출했던 아내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이면 얼른 들어오라고 계속 야옹 거립니다. 시간이 좀 늦었다 싶으면 버티컬을 손으로 젖히고 머리를 쏙 내민 채로 아내를 기다리기까지 합니다.

 

저한테는 가끔 눈을 깜빡여준다든지 드물게 제 다리에 얼굴을 비벼주는 정도가 최선의 서비스입니다. 그게 넘버 쓰리에 대한 해삼이 녀석 나름의 예우인 모양입니다.

 

딸아이의 강력한 주장으로 아기고양이를 데려오긴 했지만 아내는 처음에는 해삼이한테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녀석이 하도 달라붙고 안기려 들자 수건에 싸서 겨우 안았던 아내였는데 이제는 해삼이가 없으면 안될 정도가 됐습니다.

 

이번 89일 뉴질랜드 여행기간 동안에도 아내는 딸아이 부부나 아들녀석 생각보다는 해삼이 걱정을 훨씬 많이 했습니다.

 

해삼이도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아내에게 더더욱 찰싹 달라붙었고 아내의 무릎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습니다. 밤에는 슬그머니 침대에 올라와 아내 옆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날 밤 믿기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아내의 무릎에 한참 앉아있던 해삼이를 아내가 제 무릎 위로 옮겨놨는데 녀석이 저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어쩐 일인지 턱을 내리고 그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기를 1, 2무려 11분을 녀석은 그렇게 제 무릎 위에 있었습니다. 평소 단 몇 초를 못 버티고 도망가던 녀석이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저에게 준 겁니다.

 

그 다음 날은 어땠을까요? 녀석을 안자마자 3초도 안돼 뛰어내려가 버렸습니다. 다음에는 한 달쯤 여행을 하고 돌아와봐야겠습니다. 모를 일입니다. 그때는 또 한 시간쯤 제 무릎 위에 있어줄지도….

 

그날 밤 저는 해삼이에게 ‘11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하나 더 지어줬습니다. 녀석의 기대 밖 행동으로 녀석을 향한 저의 애정도가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동물과의 사이에서도 이럴진대 사람들과는 오죽하겠습니까? 정말 서로서로에게 잘 하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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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