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엄마 목숨하고 바꾼 돈이다. 이 돈으로 너 골프 계속 시킬 거니까 정말 잘 해야 한다…” 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짜리 딸 앞에 1천 7백만 원을 내놓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2의 박세리’를 꿈꾸며 골프를 시작했던 신지애는 중학교 3학년 무렵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집안 빚을 다 갚고 남은 어머니의 사망보험금 1천 7백만 원으로 신지애는 골프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스물 한 살의 신지애는 이제 세계 언론들로부터 ‘애니카 소렌스탐의
뒤를 잇는 골프 여왕’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신지애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가슴 속에는 늘 그렇게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가끔 TV 프로그램이나 술자리 같은 데서 흘러간 옛노래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며 눈물 짓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저런대? 그러니까
살아 계실 때 잘 하지. 돌아가신 다음에 저래 봤자 무슨 소용이람?”
어린(?)마음에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 어머니에 대해 그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생각해봅니다. 물론, 저 자신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 늘 가슴이 저려옴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효자라는 말을 듣고 자라긴 했지만, 실제로
저 자신을 돌이켜 보면 그렇지 못했던 기억,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했던 기억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행했던 잘못들은 저를 참 많이 부끄럽게 합니다. 요즘도 저는 성당에서 매주 일요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속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열 아홉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5년 전 이곳 시드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 저는 메디케어가 없었을 뿐더러 개인의료보험을 들 수 있는 여유도 갖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이 시작됐던 어머니의 병환은 장염으로 커졌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하루에 1천불씩 들어간다는 병원비 때문에 큰 병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어머니를 그대로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시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우리 집을 다녀간 의사가 “할머니, 이 사람 누군지 아시겠어요?”라고
묻자 “어… 우리 아들…”이라고
힘없이 대답하셨습니다. 그게 의식을 가진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면이었습니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어리석게도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실 줄 몰랐습니다. 아직 제가 젊다는(?) 이유로 일흔 일곱의 노모가 겪고 있었던 고통과
공포들을 뼈 속 깊이 체감하지 못했고, 가끔씩은 고달픈 일상 때문에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것도 한
없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이
Mother’s Day입니다.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그분들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잘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며 눈물 짓는 것은 이미 너무 늦은 효도이기 때문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