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아줌마가 뭐야? 사모님이라고 해야지! #4672022-07-23 16:10

아줌마가 뭐야? 사모님이라고 해야지!

 

아유~ 사모님! 더 젊어지셨어요. 이사님께서 정말 잘 해드리나 봐요.” “정장 새로 사셨네요. 누가 보면 처녀인 줄 알겠어요. 따님이랑 나가시면 자매간 아니냐는 얘기 많이 들으시죠? 호호호!” “어머! 사모님, 목걸이 정말 예술이시다. 드레스랑 너무너무 잘 어울려요.”

 

한 무리의 높고 낮은 사모님들이 한 자리에 몰려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었습니다. 사장 부인을 비롯한 이사진 부인들을 둘러싸고 과장급 이상 간부 부인 수십 명이 펼치는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대한건설/레저산업 간부사원 부부 워크숍이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는 대형 연회장에서 공식행사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1993년에 잠시 외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1992 11월 불의의 부도를 맞은 <여원>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가 회사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 다른 일자리를 고르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잇! 이번 기회에 기자고 뭐고 돈이나 좀 벌어보자!”

 

여러 신문 잡지사에서 제의가 있었지만 대한건설/레저산업 홍보팀장 자리를 택한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습니다. 회사 살리기를 하는 몇 달 동안 월급을 한 푼도 못 챙겨 굶주려 있던 탓도 컸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옮겨간 회사에서 결국 반 년을 채 못 넘기고 말았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이치 때문이었습니다. 일반기업은 전문직이면서도 자유직인 기자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그랬고, 사장이나 회장 결재를 위해 몇 시간 또는 며칠씩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에 들어간 지 3개월 남짓 만에 참석하게 된 간부사원 부부 워크숍은 정말이지 낯설기만 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제 아내 역시 그런 자리에는 상당히 서툰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미운 오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모님들도 직급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남편이 이사냐, 부장이냐, 차장이냐, 과장이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인의 서열이 매겨지고 있었습니다. 과장 부인은 차장이나 부장 부인에게 굽실대고, 그 윗사람 부인들은 더 윗사람의 부인들에게 또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시중을 받는 높은 사모님들도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조를 위해 그런 시중을 든 낮은 사모님들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남편이 부장이지 아내가 부장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사고를 가진 저와 아내는 그 사람들 눈에 정말 이상한 사람들로 비쳐졌을 겁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한 교민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아줌마,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했더니 아줌마가 뭐예요. 사모님이라고 해야지라고 하더랍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줌마,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세요라든가 언니, 여기 어묵이랑 미역무침 좀 많이 줘요했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대학시절엔 이모! 부대찌개 3인분을 5인분처럼 해주고 반찬 좀 먼저 왕창 줘. 우리 배고파 죽겠어!” 했던 게 더 맛 있고 더 정겨웠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차장 부인이 감히 사장 사모님, 이사 사모님한테 가벼운 목례만 하고 지나간 건 그들로서는 참 어이 없는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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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