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못된 놈 vs. 못난 놈 #4992022-07-23 16:37

못된 놈 vs. 못난 놈

 

초등학교 6학년 상현이는 반 아이들에게 툭하면 시비를 걸고 걸핏하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한 게 없어도 그의 눈에 거슬리면 이런저런 행패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제 학용품을 가져가기도 했고 제 공책이나 책을 심술스레 찢기도 했습니다. 제가 뭐라 한 마디라도 할라 치면 예외 없이 주먹이 날아 들었습니다.

 

남과 치고 받고 싸우느니 차라리 한 대 맞고 말자는 식으로 지내왔던 저였지만, 그날은 끝내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운동장에 널브러져 있는 상현이를 보고 아니, 태선이 너…” 하며 당혹스러워 하시던 담임선생님 얼굴이 기억에 선합니다. ‘못된 놈에게 당하고만 지내던 못난 놈의 작은(?) 반란이었습니다.

 

참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웬 쌍꺼풀 수술이람? 그것도 부부가 함께…. 아니, 왜 말을 저렇게 함부로, 가볍게 할까? 좀 진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의 이런 생각은 이리 채이고, 저리 몰리는그를 보면서, 그리고 그가 탄핵이라는 걸 당하는 걸 보면서 참 무능한 사람이라는 데까지 미치게 됐습니다.

 

뭐야? 이러자고 모이라고 한 거야? 참 나…” 2006 127일 오전 11 15, 모국의 대통령이 시드니 동포들과 간담회를 갖는다고 해서 2백명이 좀 넘는 사람들이 시티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자리에 선 채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는 것처럼 대통령의 강연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일행은 바쁜 일정을 이유로 점심식사 조차도 함께 하지 않고 다음 순방지인 뉴질랜드를 향해 떠나버렸습니다.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직접 들어보고 질문도 하고 싶어서 바쁜 수요일 시간을 쪼개 그 자리에 갔던 저도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오늘(10)이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49재입니다. 모국에서는 물론, 이곳 시드니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제가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을 기점으로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정치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오다가 잠시 관심을 가지며 고인을 못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지냈던 얼마 동안의 기간이 저로서는 못내 미안함으로 남습니다.

 

고인이 2006 12 7일 시드니 동포간담회에서 쏟아놓은 말들 중 기억에 담아둔 토막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사회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왜 당장 안 좋으냐?’고 조급해 하지만 감나무도 4, 5년 동안은 꾸준히 감을 따내고 뿌리를 튼튼히 해줘야 정말 굵고 맛 있는 감이 열리는 법입니다. 지금은 버려야 할 옛날 생각이나 행동 등을 빨리빨리 버리는 게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1998년 이래 한국은 혁신을 위한 정도를 걸어오고 있고, 그 흐름은 이제 누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한국은 가능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가 맡더라도 절대 뒤로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친노도 아니고 MB’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는 못된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못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49재를 맞은 못난 사람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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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