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4역?!

“어? 박 사장님! 어디 가세요? 그리고 웬 짐 차예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신호대기 중인 박찬우 사장을 만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 취재원으로 처음 만난 그는 종업원 30여명을 거느린 유망 중소기업의 젊은 사장이었습니다.

그의 회사는 반도체부품을 만드는 작은 곳이었지만 사람 좋은 그를 비롯해 회사 사람들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따뜻함이 아주 많이 묻어나는 매우 인간적인 회사였습니다. 그 또한 자신보다는 직원들 몫을 먼저 챙기는, 참 보기 드문 착한 사장이었습니다.

“아, 김 차장님, 오랜만이에요. 납품도 할 겸 수금계획이 있어 수원 가는 길이에요.” 그렇게 그는 가끔씩 직원들을 대신해 직접 물건을 실어 나르곤 했습니다. 어떨 때는 생산라인에 앉아 직접 제품생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신이 그쪽 분야 엔지니어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와는 또래인 데다가 주파수(?)가 잘 맞아 가끔 술자리를 함께 하곤 했는데 우리의 만남장소는 주로 그의 회사 앞 작은 포장마차였습니다. 수더분한 성격의 그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오랜만에 저녁식사 겸 소주 한잔 약속이 있던 날, 그는 일이 밀려 조금 늦을 것 같다며 괜찮으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달라는 연락을 보냈습니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텅 빈 사무실, 그가 한쪽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박 사장님, 늦게까지 혼자서 뭐하세요?”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사람 좋은 미소는 여전했습니다. “우리 경리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갔는데 새로운 직원을 뽑으면 나중에 그 친구가 돌아올 수가 없어 제가 몇 달 동안 그 자리를 대신하기로 했어요. 이래 봬도 제가 팔방미인 사촌쯤은 된답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에서 그 회사 직원들의 이직률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데에서 장난(?)을 치거나 못된 짓을 하고 종업원들 임금을 착취해야 돈을 버는 기업풍토 아래에서도 그의 경영이념은 확고했습니다. 여느 사장들처럼 골프를 치는 것도, 고급 룸살롱을 즐겨 찾는 것도 아닌 그는 언제나 일이, 회사와 종업원이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한파가 덮쳐왔을 때에도 그는 단 한 사람의 직원들도 내보내지 않고 위기를 버텨냈습니다. 자신은 월급을 못 가져가는 일이 생겨도 직원들의 월급은 단 한번도 밀린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를 크게 키우려는 욕심과는 거리가 먼(?) 그는 차근차근 그러나 아주 조금씩 회사를 성장시켜나가 지금도 뿌리가 탄탄한 건실한 회사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업연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에서 마음 착한, 일 잘하는 직원들과 함께 작은 행복을 꾸려오고 있는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어떠한 편법을 써서라도 회사를 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애쓰는 다수의 기업들 사이에서 박찬우 사장은 가히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호주나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어렵다, 힘들다’는 말이 난무하는 요즘,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편안해질 수 있는 사회가 얼른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듭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해 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그와의 술자리는 언제나 엔돌핀을 팍팍 솟게 하는 유쾌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혼자서 세 사람, 혹은 네 사람 역할을 하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던 박찬우 사장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 요즘입니다. 서로 술값을 내겠다며 밀치고 난리를 치곤 했던 그와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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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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