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술판?!

“이거 봐. 나 얼굴 퉁퉁 부었잖아. 눈도 그렇고… 다, 자기 때문이야.” 이른 아침, 아내가 볼멘소리를 하며 저를 향해 눈을 흘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아내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전날 밤이었습니다. “부침 먹고 싶어.” 별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밤 열두 시가 다돼 거실로 올라온 저에게 아내가 불쑥 던진 한 마디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부침에 술 한잔 할까?” 그냥 넘어갈 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 시간에 술을 마시자고? 아니야, 그냥 자자.” 아내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제가 물고늘어졌습니다. “아니, 뭐 어때서? 말 나온 김에 우리 간단하게 한 잔 하고 자자. 응?” 그야말로 아내가 불씨를 만들었고 제가 불을 지핀 셈이 됐습니다.

그 시간에 부침을 만들기에는 너무 번거로웠고 아쉬운 대로 집에 있던 번데기 탕과 골뱅이 통조림을 뜯었습니다. 맵싸한 국물을 위해 컵라면도 두 개 꺼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밤의 술자리는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늦은 시간에 라면까지 먹었으니 다음 날 얼굴이 안 부을 리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오늘 운동한 거 다 꽝 됐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힘들게 운동하는 건 물론, 살을 뺀다며 저녁식사까지 초 간단으로 끝내는 아내로서는 적잖이 억울할 터입니다. 그러게 ‘귀신 듣는데 떡 소리 못한다’고, 왜 그런 소리를 해가지고….

평소에도 우리는 이런 상황을 종종 맞습니다. 주로 제가 ‘껀수’를 만들거나 분위기를 잡는 편입니다. 느닷없이 삼겹살이 먹고 싶다든지 제육볶음에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든지…. 그때마다 마음 착한 아내는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게 한낮이든 초저녁이든 아니면 한밤중이든 상관없이.

“아니, 뭐야? 지금 니들끼리만 맛있는 거 먹는 거야? 나만 쏙 빼놓고? 얘들아, 먹는 거 갖고 한집에서 그렇게 치사하게 구는 거 아니다. 얼른 나도 한 잔 줘봐라.” 늦은 밤, 아들 며느리가 몰래(?) 펼쳐놓은 술자리에 시어머니가 뜻밖으로 합류하는 것…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허니문베이비까지 가졌던 우리는 그야말로 둘만의 신혼을 즐겨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 성격의 어머니는 ‘며느리한테는 무조건 세게 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었던 터라 그 같은 그림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다 늦은 밤에 무슨 짓들이래? 내일 출근할 사람이 피곤하지도 않은지, 원… 쯧쯧쯧….”

그러던 우리가 신혼 아니, 제2의 신혼생활을 시작한 건 딸아이가 결혼한 2011년 5월부터였습니다. 아직 혼자인 아들녀석까지 ‘독립’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내쫓고(?) 나니 비로소 우리 둘만의 시간이 가능해졌던 겁니다.

그렇게 둘만 살게 되니 밤이 됐든 낮이 됐든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밤 늦게까지 아니,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있어도,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있어도, 끼니를 대충 때워도,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어도…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에이, 우리 나이에 무슨 재미로 둘이서만 산대? 다들한테 한 번 물어봐. 자기네가 좀 별난 거지.” 주변에서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기하게도 둘이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삽니다. 생각과 뜻이 맞고 이른바 죽이 잘 맞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제가 열심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별채로 내려왔습니다. “자기야, 아~” 막 담근 겉절이를 제 입에 넣어주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다시 주방으로 올라가는 아내…. 그게 우리가 둘이서만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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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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