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 달콤한 토마토… 지중해 푸른 물 속으로 다시 한번 풍덩 하고픈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스스로 테스트 해야만 한 때가 있었다. 그 해 1년은 나의 악몽 같았던 고 3 때와 비슷했다. 아니 아마도 고 3때보다 더 철저하게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01_힘들었던 코스를 마치고 나니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뭔가를 집중해서 열심히 해본 적은 드물었다. 문학과 예술을 즐겨왔고 수학은 나하고 거리가 먼 분야라 여기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터라 더 긴장하며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동창들은 이곳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나를 보면 신기해 한다. 나 같은 사람도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집중하면 뭐든지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의지가 경험을 통해 생겼다.

힘들었던 코스를 마치고 나니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의 고생에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영국에서 홀로 지내고 있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인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6개월을 생활하면서 이미 현지인이 된 듯 편안해 보였다.

겨울에 도착한 영국은 젖어 있었다.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영국 겨울의 추위는 비바람과 축축한 안개 속 기운이 더해져 뼛속까지 그 스산함이 전해져 왔다. 이런 추위를 피해 많은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바로 몰타섬이었다. 우리는 음산한 겨울과 잠시 안녕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몰타로 일주일간 그룹여행을 떠났다.

공항에 도착하니 여행객을 맞으러 나온 대형버스가 밝은 햇볕 아래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를 끼고 있는 수많은 호텔들을 들르면서 버스는 관광객들을 하나 둘씩 차례로 뱉어낸다.

 

02_정원을 따라 내려가면 지중해가 바로 우리의 수영장이 됐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번잡한 곳들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바다를 끼고 자리잡은 이 호텔은 도착하자마자 내 맘에 쏙 들었다. 짐을 내려놓고 커튼을 여는데 누군가 정성을 다해 가꾸어놓은 아름다운 정원이 층층이 펼쳐져 있고 계단 끝에는 파아란 바닷물이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이 멋이 있었다.

일주일간 지낼 곳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였다. 정원에 식물들과 꽃들은 촉촉함을 머금고 그 싱싱함을 뽐내고 있다. 정원을 따라 내려가면 지중해가 바로 우리의 수영장이 되었다.

짙푸른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고 정원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바로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이곳에서 아주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정원을 거니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 바닷물 속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등등 천상이 따로 없었다.

빨간 토마토가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단지 색깔 때문만은 아니었다. 토마토가 설탕 없이도 이렇게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깨달았다. 몰타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지중해의 햇살과 토양으로 인해 보통 일반 토마토에 비해 단맛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지중해식 식단으로 가득한 뷔페 음식은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식당에서 만난 낯선 이들은 일주일을 지내면서 어느새 모두 친구들이 되었고 수많은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03_중세시대 건물들 잘 보존돼 있는 골목 사이로 과거로의 여행?!

하루의 일정들을 공유하며 다음날 여정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면서 몰타의 일주일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한 영국부부는 이곳에 와서 몇 개월을 지내고 집에 돌아가면 오히려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다면서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여행도 하고 전기료도 절약하고 일석이조라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중세시대 건물들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골목 사이를 걸으면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 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돌로 튼튼하게 지어진 집에서 몰타인이 걸어 나왔다. 마치 중세건물 속에서 현대인이 걸어 나오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눈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참 그와 수다를 떨다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속 중세 마을들을 연출한 세트장이기도 했던 바닷가 주변을 마차가 돌고 있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마차에 올라탔다. 한가롭고 여유 있는 시간 속에 황홀한 노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특별한 동굴이 있다고 해서 발길을 옮겼다. 동굴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기도실과 함께 성모상이 놓여 있다.

 

04_밝고 따사로운 지중해의 햇볕… 고조섬에서 보내기 적절한 날씨

어릴 적 독일 액센트를 쓰는 신부님께 영어를 배우자고 친구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접했던 성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는 시골에서 외국인을 본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신기해서 열심이었다.

발음이 좋다고 나를 잘 챙겨주셨던 후덕하신 신부님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독일에서 한국의 시골 벌교까지 어떻게 발걸음을 하시게 되었을까. 어린 마음에도 믿음에서 나오는 고요와 경건함에 더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음악에 더 이끌렸을지도…. 동굴 안에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하고 간 기도의 흔적들이 놓여진 꽃들과 촛불들 사이로 보였다. 몇몇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지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자리한 참으로 경건한 지하 동굴이었다.

반면, 지중해의 햇볕은 너무 밝고 따사롭다. 하루를 고조섬에서 보내기에 적절한 화사한 날씨였다. 고조섬은 몰타 자매섬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섬으로 몰타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고조는 시골 풍경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섬을 여행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구석구석을 돌았다. 경작이 잘된 밭과 드넓은 들판이 보였다가 로마시대에 지어졌을 만한 웅장한 성들이 성곽 사이로 보였다.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가 번잡한 시내가 보이고 섬은 참 아담하고 왠지 모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05_탄광촌에 온 듯한 착각… 화산폭발이 마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리창 모양을 하고 있는 Azure Window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 주위를 배로 돌아 가까이에서 보았다. 불행하게도 이 바위는 최근에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창 사이로 보았던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한데 시간은 이렇게 묵묵히 흘러만 가고 있었다. Blue Lagoon의 푸른 바다색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또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몰타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 시실리 여행도 즐겼다. 몰타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 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기후는 몰타와 비슷해서 마치 바로 옆 동네로 놀러 나온 느낌이었다.

다만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도로 표지판과 억양이 강한 여행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탈리아로 왔다는 실감이 났다. 산등성이를 타고 버스는 하염없이 오르기를 계속하더니 결국 산 중턱 평평한 곳에 멈추어 섰다.

저 멀리서 잿더미처럼 보이는 흙더미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마치 탄광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주위는 삭막했다. 화산폭발이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라고 한다. 그 폭발로 흘러내린 시커먼 흙더미 사이로 파묻혔던 집들이 그 당시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보존되어 있다. 과연 자연의 힘이란….

 

06_힘든 시간 뒤 내 앞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벅차게 다가왔던 여행

어둠이 깔릴 무렵 시내로 내려와 아기자기한 초콜릿 가게에 들러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화덕구이 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먹고 나서 낯선 시내거리를 구경했다.

사람 사는 냄새들, 왁자지껄한 소리들 사이를 벗어나자 어둠과 어울리는 고요함과 정적이 내려 앉아 있다. 여행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망중한을 잠시 맛보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열심히 노력하는 때가 있으면 그 결실을 즐기는 시기도 반드시 오게 마련인가 보다. 힘든 시간 뒤 내 앞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벅차게 다가왔던 몰타 여행….

그래서일까? 내가 다녔던 많은 곳들 중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쏟아질 것 같이 눈부신, 화사한 햇살 아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토마토를 먹으며 지중해 푸른 물 속으로 다시 한번 풍덩 빠져보고 싶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School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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