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의 다양성 독려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 공동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작용은 공동체 삶의 본질을 구성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우리의 사회나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기초를 둔 사회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사도 바울은 ‘벽을 눕혀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문화와 전통, 사상과 가치관이 두 그룹-유대인 성도들, 이방인 성도들-에게 서로 다른 관점으로 도전했다.

 

01_서로 다른 두 도전 

유대인들에게 율법 (토라), 안식일, 음식 규정, 할례의 주제로 도전하고, 이방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와 성적, 윤리적 부도덕의 주제로 도전했다.

나아가 그는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이방인 성도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유대인의 특권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도전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선민사상 –이방인들과 구별된 유대민족– 은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정했다.

이 유대 선민사상은 유대문화의 중심이며 필수요소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께 결코 적대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유대인들이 이 특권을 교회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바울 자신도 유대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에게 그들의 선민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교회의 소유권과 리더십을 되찾고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에는 완강히 반대했다. (롬 2:13-29)

 

02_새로운 생활방식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두 그룹 모두에게 특권과 선호도를 강조하는 옛 생활방식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리스도 공동체에 적합한 새로운 생활방식인 ‘성령에 이끌리는 삶’으로 변화되길 당부했다.

이 새로운 생활방식은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 거듭나고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 정신세계 및 행동양식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고 개조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문화,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적응하지도 못한다. (롬 6:4)

이 새로운 생활 방식은 낮아짐, 겸손, 이타심 그리고 희생적인 예수님의 생활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의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버려야 했다.

이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문화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 위에 자신의 특권과 선호도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대신, 모든 성도들은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야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20)

이 새로운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 공동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배경과 차이점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을 저평가하지 않고 절대 낮춰보지 않는다. 이 새로운 문화 공동체는 서로서로의 다양성을 항상 독려한다.

 

03_다문화 사회로의 전환

오늘날 ‘다양성 안에서의 연합 (unity in diversity)’은 그 어떤 것보다 더욱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변화시키는 힘’은 성도들을 갈라놓는 모든 요소를 극복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또 성령의 힘은 문화, 성별, 언어 및 사회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모든 장벽, 장애물, 차이점 및 구별됨을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성도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기 위해 그들의 원래의 원초적, 문화적, 민족적 독특함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두 그룹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통된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놓여있는 모든 장애물과 차이점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확신적 믿음이 필요하다.

바울은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점과 독특함을 그리스도 중심인 문화 공동체 안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모두가 똑같이 보이거나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모습과 행동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오히려 다양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민족적 배경 안에서 하나의 복음, 하나의 믿음, 한 분 하나님, 한 주님과 한 성령을 제시하며 ‘연합’ 하기를 권면한다. .

어느 날,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호주 대부분의 자동차 대리점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어를 포함한 최소한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호주 자동차 딜러 중 85 % 이상이 영어를 포함한 2-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호주 사회가 점점 더 활발하게 다문화 사회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전형적인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떠한 교회나 기독교 공동체도 이런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과 변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떤 비즈니스나 학교도 이런 다문화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어떤 지역 사회도 다문화 사회로의 급박한 전환을 회피할 수 없다.

어떤 가정들은 다문화 가족 구성원들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나 공동체가 ‘외견상 다문화’ 소위 ‘무늬만의 다문화’ 모습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에 의견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다양성을 누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글 / 권오영 (철학박사· 알파크루스대학교 교수·Dean of Korean Language Prog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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