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쓴 DMZ 투어

촉촉한 봄날 시의 발화점에 성냥개비 같은 統 자 올려놓으니 화르르 一 자로 불붙는 언어들   한반도 허리쯤 길이 248㎞에 폭 4㎞ 철조망 지퍼가 쩌억 열리고   통일공원 한복판 금강송엔 흰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가 붙어서서 제 새끼들의 부화를...

제5호 권두에세이

다섯 번째 결실을 조심스레 펼쳐 보입니다. 고국과 호주 시드니의 계절은 정반대로 고국이 더우면 이곳은 춥지만 <문학과 시드니> 안에 담긴 문학의 마음은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밤의 냄새가 흘렀다 도로변 성당 울타리, 가로수 낙엽들을 헤치며 빛을 찾았다 뜨이지 않은 눈, 볼 수 없어도 찾는 것은 본능이었다   지난 어둠 속에서 엄마는 섭리가 뚫어 논 야울링*에 빠져 어설픈 사랑이...

패밀리 팩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여행을 떠난 딸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모닝빵과 커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주말 아침 풍경은 잠잠하고, 빗줄기마저 주변 공기를 축축하게...

콩꽃

바람이 콩꽃 줄기를 쑤욱 잡아당겼어요   막 태어나려는 콩의 가슴이 쿵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꽃눈은 꾸물꾸물 껍질 속에서 꿈을 키우고   고개 숙인 채 살짝 바닥으로 떨어진 꿈 흙이 포근히 안아 주었어요   그리고 봄날, 부드러운 말...

마거릿 리버에서의 첫날밤처럼

깊은 밤, 잠에서 깼다. 갱년기 탓일까. 요즘 들어 수면 장애로 고생이다. 오늘 밤도 이렇게 밤을 새울 것 같다.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어둠뿐이다. 빛을...

잘려나간 귀

누군가 속삭인다 난 괴물이야 뚝뚝 번지는 잉크 멈추지 않는 손 검은 귀가 허공에서 자라난다   푸른 밤 너는 하루를 끝까지 쓰지 못한 채 잘려나간 문장들 한참 망설이다 결말부터 도려낸다   누구의 이야기인지도 모를...

담담히 버텨온 기억의 저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래고 삭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책 표지 같은 기억이 있다. 최종 면접을 보고 발표를 기다리던 을지로2가 맥주 골목. 면접장에서 마주친 역술인의...

꽃이 지는 날에도 여전히

1 봄비처럼 달콤한 쳇 베이커의 목소리 쌀 향과 포도 향이 섞인 봄비가 목울대를 타고 내려앉는다   알코올에 절은 채 살아온 인생 촉촉한 목소리 아래 미처 지지 못한 가시꽃   목소리와 사람이 어긋나도 베이커는 베이커니까   뭘 잘못해도 그저...

호박

내 머리만큼 커다란 호박이다. 한여름의 진초록과 바람이 풀어낸 연녹색 단호박이 식탁 위에 덜렁 놓여있다. 방금 낑낑대며 들고 와 둘 곳을 찾다가 올려둔 거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