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레시피

가을을 토막 낸다가을 무를 썬다 쓰윽 쓰윽 썩 썩 썩부서진 가을이여인의 손끝에서 하얗다 도마 위에 서 있던도미노 행렬이국솥으로 무너진다 시퍼런 혀 날름거리며훑어대는 가스레인지에엉덩이 달아오른 국솥 안에서무 소금...

당신에게

호이안의 찬란한 밤소원 배에 올라 촛불 하나 밝힙니다 보기 좋게 차려 학부모 면담에 오시던 날 당신 봄날 아침 그렇게 떠날 줄 상상도 못했었지요 없는 손 꼭 잡고 춤을...

소아청소년 병동

당신은 보푸라기만 뜯으며 누워있다 Nepean Hospital 재활 병동하얀 양파로 누워있는 당신침대 시트엔 떨어져 깨어진침묵 쌓여 있다 곡기를 끊는다고 의사가 죽게내버려둘 것 같아 창밖에 바람이 불고유칼립투스 나무가 몸부림치며...

쉰 소리로부터 몸이 울린다

망가지는 몸으로부터달아나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세포 틈에 끼어드는 바이러스몸에 사는 스트레스 부추기고심장의 붉은 강생명의 다리 잇는다 세포 한복판에서 뒤엉킨 질서돌봄 없이 간과해버린헤진 별의 조각처럼균형이 흔들린다세포들의 탐욕은...

천의 소리, 나의 인생

건반을 어루만지면 흐르는 마음의 소리 쇼팽의 전주곡 빗방울 소리슈베르트의 가곡 마왕 말발굽 소리바흐 예수 수난곡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베토벤 월광곡 솟구쳐 오르는 소리 음악가 저마다 다른...

어른 아이

민들레 하나가 사람들 틈 사이로 숨어들었다. 구겨 넣은 몸이 바람결에 터지려 해요. 조금씩 비명이 빠져 나오는 날이면 넥타이를 뒤로 꺾어 비어있는 구두에 입맞출게요. 새파랗게 부서지고...

겨울, 서울

키재기하듯 높다란 아파트 숲성난 한풍들 회초리 들고 몰려가고뿌루퉁 잿빛 하늘은미세 먼지에 재채기 쏟아낸다 곡예 하듯 빠져나가는 좁은 골목 미니 트럭사연 담은 갈색 가방 오토바이 재촉한다 인기척이...

마음 고르기

냉동실에 마음을 얼렸다가꺼내 본 적 있나요 당신 마음 울퉁불퉁 달아오르면꺼내세요 냉동실에 넣었다가 마음의 온도가 얼어붙어 있다면,고요한 물에 녹여 보세요 냉동에서 풀어질 때 당신이전자레인지에 녹일 수 있지만뾰족한 마음이...

릴리필드, 목련

겨울 대치하는 전령사들서로 선발대 뛰겠다 아우성치니솟아나는 열기매의 눈으로 봄을 납치한다 한겨울 릴리필드 뜨락 목련햇살이 통통 튕겨 연주하는 봄 1악장에잎사귀 나기 전 서둘러하얀 꽃망울들 떠뜨린다 아직 늦겨울푸른...

코비드 재택 K씨의 근무일지

8시 59 분 59…99999999초, 땡!급해진 컴퓨터 손부터 찾는다 기인 밤 기다렸다 투두둑 뛰쳐나오는 이메일을커피 물에 붓고급한 용무는 빵에 바른다 중요한 지시부터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소스라치게 몸 흔들어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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