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스토커

아직 침대에서 꼼지락 댈 때어렵고 복잡한 주문을 걸어혼을 빼가던 그 어둑한 발소리로 다가와전등을 떨게 하던 그 길 건너 술집에서 지켜보던그림자 밥풀이 냉장고 안에서 날아다니고연어 참치가 도마 위에...

진술서

저는 시를 쓰지 않습니다진술만 할 것입니다제가 쓴 글들은 시가 아닙니다 감정의 상태만 기술하겠습니다제 글을 가슴에 담는 건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시는 당신이 쓰십니다저는 당신의 시를 밤새 읽으며당신의 시로...

닮은꼴

우리 집엔두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딸이 결혼하기 전이집 저집 데리고 다니다가퍼스로 이사 가며남기고 간 고양이들 카이사와 히메 몇 해를 함께 지내다 보니고양이들의 성격이조금씩 아이들을 닮아갔다. 카이사는 느긋하고 깔끔하며,무엇보다...

카톡 카톡

둥글고 단단한 새벽 우리 동네 슈퍼마다동치미 무들이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 "가을무는 아무렇게나 담가도맛있어야""한 다발 사 올 뻔했어." 논두렁의 누런 호박탱글탱글한 통팥 가마솥 한가득 쑤어내던 죽 동치미 양은 사발그 둥근...

더웨이

빰 할퀴고 지나간 바람 잡지 마세요붉은 대문 한 번 더 녹슬잖아요 천 개의 바람이 불어천 개의 전쟁이 일어요 슈츠케이스 들고 찾아온 그이는정확한 시간에 들른 거죠 구불구불 창자...

밤의 레시피

가을을 토막 낸다가을 무를 썬다 쓰윽 쓰윽 썩 썩 썩부서진 가을이여인의 손끝에서 하얗다 도마 위에 서 있던도미노 행렬이국솥으로 무너진다 시퍼런 혀 날름거리며훑어대는 가스레인지에엉덩이 달아오른 국솥 안에서무 소금...

당신에게

호이안의 찬란한 밤소원 배에 올라 촛불 하나 밝힙니다 보기 좋게 차려 학부모 면담에 오시던 날 당신 봄날 아침 그렇게 떠날 줄 상상도 못했었지요 없는 손 꼭 잡고 춤을...

소아청소년 병동

당신은 보푸라기만 뜯으며 누워있다 Nepean Hospital 재활 병동하얀 양파로 누워있는 당신침대 시트엔 떨어져 깨어진침묵 쌓여 있다 곡기를 끊는다고 의사가 죽게내버려둘 것 같아 창밖에 바람이 불고유칼립투스 나무가 몸부림치며...

쉰 소리로부터 몸이 울린다

망가지는 몸으로부터달아나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세포 틈에 끼어드는 바이러스몸에 사는 스트레스 부추기고심장의 붉은 강생명의 다리 잇는다 세포 한복판에서 뒤엉킨 질서돌봄 없이 간과해버린헤진 별의 조각처럼균형이 흔들린다세포들의 탐욕은...

천의 소리, 나의 인생

건반을 어루만지면 흐르는 마음의 소리 쇼팽의 전주곡 빗방울 소리슈베르트의 가곡 마왕 말발굽 소리바흐 예수 수난곡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베토벤 월광곡 솟구쳐 오르는 소리 음악가 저마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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