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의 열기에 바람도 후줄근하다북향 대청마루에 누워 듣는 매미 소리혼신의 힘으로 부르는 노래가자장가 되어 아득히 들려온다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밭에서 따온 수박을우물에 넣었다가 꺼내 자르시는어머니의 손놀림이...
한국 살이
“오늘이 그날이구나.” 차례상에 올릴 과일을 조심스레 씻으면서 아버지가 툭 하고 건네는 한마디. 순간 울컥하는 맘을 간신히 붙잡고 태연한 척 “네” 하고 대답하며 아침 루틴을...
눈꽃
인제 들녘은 너울거리는 흰 나비 떼 그 위를 무참히 밟고 논두렁 밭두렁을 정강이까지 빠지며 뛰다시피 김장독을 양쪽에서 잡고 미끄러질까 놓쳐 떨어뜨릴까 손이 얼었다 녹으며 소양강가...
동생을 데리고 간 푸른 뱀
2025년은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푸른 뱀이라니… 우리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름이다. 마치 전설의 고향 속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그...
고향 가요
아득히 아버지 뵙던고향에 가요마음이 본디 따뜻한 고향 타향 객지뭇 사람들 눈치 속삶이라는 무게를 버티지 못해겹겹으로 쌓여 있는 고향을 잊었네요 다 지나 갔어요 세월에 묻혀서젊은 꿈은 지금쯤...
너를 보낸 후
빛도 드문 길목에서비뚤어진 차양의 틈을 뚫고 들어온조각난 햇살이 아른거린다그림자 진 뒷모습의 경계를 어슬렁대는 빛은가녀린 선의 목 언저리를 맴돌다 시나브로 낡은 천 사이로 사라져가고잘 마른...
한국을 등지는 사람들
1863년부터 조짐이 보였다. 대를 이어 지속되던 가난과 관료의 억압은 백성들로 하여금 앞날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미리 계산하고 계획하고 자로 잰 듯 원칙에...
기차를 타고 허기진 배를 채우다
나는 지난 일주일 친구 에릭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와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은 즐겁고 편했다. 에릭이 연구하고 찾아낸...
친구
중국어로 친구를 붕우 (朋友)라고 쓴다. '붕'과 '우'가 모두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두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오십에 읽는 주역>에서 강기진...
창작, 그 상상의 유혹
10월이 되자 사람들은 차츰 안도하기 시작했다. 기승을 부리던 열대야가 물러가고 바람이 한결 시원해졌기 때문이다. “이제야 가을이 온 것 같습니다…”그 즈음이었다.갑자기 들려온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