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독립

“엄마, 나 캔버라에서 일해봐도 될까?”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알아보던 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는 시드니가 아닌 다른 도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딸의 말에 적잖이...

그 너머엔

정신 없이 달려가 보니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한지가 고작 일주일 전이였는데. 모임이 끝난 후 나날이 이 모임에 가슴 설레며...

눈 감고 본다

그리움이가슴 들추고 올라오면밀려오는 향수에 뒤척이다가졸음에 실려 고향에 간다사랑하지 못한순간을 보속하며허한 마음 보따리 움켜잡고옛집을 찾는다 물감 풀어놓은꽃밭 안 젊은 엄마빨갛게 익은꽈리 다발 흔들며예쁘다 예쁘다연방연방감탄한다꽃 닮아 웃는...

소나기

갑자기햇빛 자취 감추고양동이로 붓듯 쏟아지는 비왜 저럴까늘 궁금했어나도 모르게가슴 메운 먹구름눈물로 터지고칭칭 감긴듯 한구렁이가뭇없이 사라져살 것 같았어알고 있었나 봐때론까닥 없이 비워져야 된다는 것  이남희 (문학동인캥거루...

고향냄새

푸른 하늘 덜어 담은함석 두레박한 모금 물냄새 쇠맛도 담겨있다 장독대엔 된장 고추장 간장익는 냄새할머니 장맛은 며늘 손끝에도 있고 부뚜막 가운데 걸터앉은무쇠솥엔보리밥 숨 참는 냄새 가득하다 부지깽이 솥뚜껑...

진술서

저는 시를 쓰지 않습니다진술만 할 것입니다제가 쓴 글들은 시가 아닙니다 감정의 상태만 기술하겠습니다제 글을 가슴에 담는 건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시는 당신이 쓰십니다저는 당신의 시를 밤새 읽으며당신의 시로...

시드니 감나무와 포섬: 공존의 철학

어떤 존재가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여백과 가장자리

게일 홈스 (Gail Holmes)의 <In the Margins> 1를 들춰 읽는 동안, 나는 마치 17세기 영국을 거닐고 있는 듯했다. 왕당파가 의회파에 패배하고 찰스 1세가 포로가...

사랑의 역사

소설에 흥미를 잃은지 꽤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선택의 내면에 깔려있는 부적절한 욕망과 무지에 대한 비판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선택한...

침묵에 익숙함

차가운 유리처럼 깨질 것 같은 식탁가족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김치 된장찌개 냄새가 없다 손자는 스마트폰에아들은 티브이 앞에 식탁 위에 쌓인 먼지말을 잃은 듯반복되는 고요를 맛본다 할머니가...
Translate (번역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