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지금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고등학생인 둘째 형님은 학교에 가려면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형님이 버스 타는 종점을 지나 좀더 걸어가야 했다.
그날 아침, 형님이 버스에 오르고 나자 학교매점에서 파는 단팥빵이 생각났다. 그때 ‘앙꼬빵’이라고 하는 단팥빵은 너무 맛있었다. 한번에 10개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격은 1개 30원으로 기억된다.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3층 교실로 올라가는데 계단에 물에 흠뻑 젖은 단팥빵이 떨어져있었다. 누군가 뭔가 잘못돼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걸 주워 들고 힐끗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 단팥빵을 급하게 꾸역꾸역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버스 뒷자리에서 서성거리는 형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버스 뒷문 앞에서 형님에게 앙꼬빵 사먹게 30원만 달라고 소리쳤다. 형님은 나의 외침을 듣지 못했는지 나를 돌아보지 않았고 버스는 바로 문을 닫고 출발해버렸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형님의 등이 뒷창문으로 보였다. 나는 형님의 등을 보면서 버스를 쫓아 뛰었다.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는 동안 형님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는 정류장에서 내가 붙잡기 전에 떠나갔다. 버스는 계속 내 눈앞에서 달렸다. 버스를 뒤쫓았다. 정류장마다 버스는 나보다 몇 걸음 먼저 떠났다.
후암동 시장 앞 가게들을 지나자 마침 같은 반 친구가 지나갔다. 지나가는 친구에게 책가방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버스를 뒤쫓아 뛰었다. 그렇게 서울역 남대문을 지나 종로2가에 들어서면서도 버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버스는 점점 멀어졌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중앙고등학교 가는 길을 물어 숨을 헐떡이면서 학교 앞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마침내 둘째 형님의 교실에 들어섰다.
뒷자리 책상에 걸터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형님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30원만 달라니까 그냥 갔잖아!”라며 징징거렸다. 형님은 나를 학교 매점으로 데려가 앙꼬빵이랑 크림빵이랑 사주고 돌아갈 버스 차비도 줬다.
인터넷으로 요즘 고국의 단팥빵 가격을 확인해 봤다. 10개에 대충 1만 2000원에서 1만 4000원정도 한다고 한다. 1개에 1200원에서 1400원 정도가 되는 거다. 그동안 화폐개혁도 되고 세월도 무수히 흘렀으니 가격상승폭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격에 관계없이 단팥빵은 나에게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야당대표가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서 1인당 25만원씩 긴급지원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높으신 정부나리들은 그렇게 제안하는 것은 포퓰리즘이고 국가예산도 1조원이 넘게 든다면서 절대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플레를 부추길 염려가 있음을 덧붙였다는 거다. 울분이 치솟고 분통이 터진다.
나는 인플레이션 (Inflation)이니 디플레이션 (Deflation)이니 하는 것에 고난도의 고통스런 표정을 연출하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하루를 허덕이면서 내일은 괜찮아질 거야, 내일은 나아질 거야 하면서 살아가는 민초일 뿐이다.
가진 것 없는 민초들은 오늘 배부르면 행복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고, 그렇게 정치하는 놈이 제일 똑똑한 놈이다. 당장 배가 고픈데 무슨 인플레 디플레 하면서 국가 장래가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소위 배부른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꼴 보기 싫고 매스껍다는 거다.
25만원을 요즘 단팥빵 가격으로 계산해 봤더니 대충 200여개를 살수 있다. 내가 단팥빵 한 개 먹고 싶어 형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라톤선수처럼 뛰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 밖의 개수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25만원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 돈으로 한꺼번에 단팥빵을 사다 놓으면 방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을 수 있을 거다. 얼마나 뿌듯하고 얼마나 배가 부를까. 먹는 것도 그렇다. 하루에 대여섯 개씩 먹어도 한 달은 넉넉하게 먹는다. 민초들은 단팥빵 200개라면 후암동에서 종로2가는 물론이고 한참 먼 청량리까지라도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갈 거다.
그런데도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나리들은 포퓰리즘, 국가예산, 인플레 어쩌고 떠들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긴 국민세금으로 고급 음식만 먹어대는 나리들이 단팥빵 맛을 알기나 하겠는가. 늘 배부른 나리들이야 나처럼 형님의 뒷모습이 등대처럼 보일 리도 없을 거다.
국가란 무엇일까? 나는 정치공학적인 개념에 지극히 우둔하다. 권력을 비판하고 재단할 능력도 부족하고, 그런걸 그렇게 아는 척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나설 수준도 못 된다. 나의 수준은 구경꾼, 방청객, 그러면서 혼자 씩씩대는 정도다.
하지만 분통이 터지고 울분이 치솟는 것은 수준과는 관계없다. 그건 내 조국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내 피붙이들이 숨쉬며 사는 세상이고, 나의 보물 같은 후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 제발 못 가지고 힘든 사람들을 혈육처럼 감싸주는 대한민국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