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3일 이른 아침…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시드니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틀 전 뉴욕에서 911테러가 발생했던 터라 여기저기가 어수선하면서도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운데 제 눈에 비친 시드니공항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그 규모가 작았습니다.
마중 나온 후배기자의 옆자리에 앉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나지막한 시드니 메트로의 모습 또한 매우 소박해 보였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캠시… 이후 거의 4년 반 동안 우리가 둥지를 틀었던 그 동네는 마치 한국의 조그만 읍내를 연상시켰습니다.
어디를 가나 1층 어쩌다 2층 높이의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한국과는 달리 길들이 사각형으로 잘 정리돼 있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상가 밀집지역에도 높아 봤자 2층으로 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참 정겹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쩌다 4층짜리 아파트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면 크고 작은 나무들에 둘러싸인 ‘몽글몽글한’ 동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제가 처음 와서부터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시드니의 집들에 관한 기억입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만 해도 ‘이 넓은 땅에 집은 왜 이렇게 작게 지었을까?’ 하는 의문을 심심치 않게 가졌었는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 집 짓는 곳들이 많고 이제는 툭하면 2층집입니다.
옥탑방… 이곳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국에서도 맨 꼭대기 층은 햇볕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덥다는 인식 등으로 회피(?)의 대상이 됐었습니다. 호주에서는 ‘코너 집, T정션 집은 사지 말라’는 인식도 일반화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옥탑방이라는 표현 대신 ‘펜트하우스’라는 이름과 함께 꼭대기 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던 코너 집들의 인기도 급부상했습니다.
워낙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한동안 뒷마당에 그래니플랫을 짓는 게 유행하더니 이제는 코너 집을 사서 듀플렉스를 짓는 게 일반화됐습니다. 옛날 집 하나를 사서 새 집 두 채를 짓는 겁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내 집 장만이 어려운 자녀들이, 심지어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듀플렉스를 지어 함께 사는 추세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사실, 아침 저녁으로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면서도 ‘따로 또 같이’ 살기에는 듀플렉스 만한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3년 전쯤 우리 집을 허물고 듀플렉스를 지으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프론티지가 20미터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 라이드 카운슬의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그 계획을 포기하고 세 번째 리노베이션을 했던 겁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전에는 좀처럼 보기 쉽지 않았던 7, 8층 심지어 10층을 훌쩍 뛰어넘는 고층 아파트 혹은 주상복합 건물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론, 시드니도 시티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는 진작부터 고층건물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던 지역들에서도 키다리 건물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 겁니다.
크고 높은 건물들도 잘만 지어 놓으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소 오래 되고 촌스러운 모습의 1층짜리 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옛날(?)이 왠지 조금은 더 정겹게 느껴지고 그리워지는 건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습니다.
이스트우드 블랙스랜드 로드에서 러벨로드로 꺾어 들면 저만치 보이는 우리 집 자카란다 나무가 느닷없이(?) 들어서고 있는 2층집 두 채 때문에 조금은 덜 예뻐 보입니다. 이러다가 너도 나도 2층집 짓기 경쟁에 뛰어들면 정말 답답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그때 어떻게 해서든 2층집을 짓는 건데 그랬어…’ 하는 아쉬움을 되뇌게 되는 건 참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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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