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이 지난 오늘엔…

인쇄소에 파일을 보내고 나니 정확히 새벽 3시 30분이었습니다. 시티에서 쉐어를 하고 있던 편집디자이너 헌숙씨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시간은 이미 네 시 반을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에 일하던 매체에 비하면 3분의 2밖에 안 되는 분량이었기에 수월하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회사인수 첫 주였기 때문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6년 넘게 유지해온 기존 시스템 그대로 진행하도록 놔뒀던 건데 새벽 세 시 반이라니….

2005년,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매체들이 밤 열두 시를 넘겨가며 마감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제너럴매니저로 일하던 매체는 가장 많은 페이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저녁 여덟 시면 편안하게 마감을 끝내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인쇄소로 달려가 그 많은 코리아타운을 회사 밴에 싣고는 영업부장과 둘이서 직접 배달에 나섰습니다. 인쇄소가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시티, 본다이, 캠시, 스트라스필드, 리드컴, 이스트우드, 블랙타운… 시드니 메트로 지역 전체를 돌고 나니 저녁 여덟 시였습니다.

목요일 마감작업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다음 날 하루 종일 딜리버리를 하고 나니 그야말로 파김치가 됐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둘째 주부터 곧바로 마감작업 시스템을 바꾸고 금요일 코리아타운 딜리버리도 전문업체에 맡기는 등 혁신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저는 아주 작은 것들도 희한하게 기억을 합니다. 지난 화요일, 10월 1일이 제가 코리아타운을 인수한지 꼭 14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을 추억(?)하며 아내와 둘이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그렇게 회사인수 첫 주에 고생을 바가지로 한 것을 시작으로 초반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여기저기에서 툭툭 튀어나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회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그야말로 24시간 세븐데이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던지 아침 일곱 시 반이면 어김 없이 회사에 도착해 밤 열두 시가 돼서야 회사를 나서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고 이곳에 와서도 세 곳의 매체를 거치며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회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직접 지는 건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코리아타운 사무실은 이스트우드 원산 (옛날 아리산) 위층에 있었습니다.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때우며 일을 하고 있노라면 아래 층에서 올라오는 짜장면이며 짬뽕, 탕수육 냄새가 또 다른 배가 고프게 만들었습니다. 맞은편 이스트우드호텔에서 풍겨오는 스테이크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그리고 수십, 수백 마리 앵무새들의 떼창(?) 소리는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렇게 6개월쯤을 지나면서부터는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자타공인 코리아타운이 선두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난 목요일 밤은 그야말로 뿌듯함과 보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몸은 힘들고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편안한….

이제 14년의 세월이 흘렀고 상황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쓰나미 같은 온라인시대의 대두, 그 안에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인쇄매체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괴물들 틈에서 인쇄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전문성을 가지고 깊이 있게 특화되는 것입니다.

이쪽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매체혁신 그리고 온라인과의 충돌 사이에서 새로운 틈새를 찾는 노력이 시급한데 전문성도 없고 개념도 없는 사람들에 의한 역주행과 반칙이 난무하는 현실에 요즘 목요일 밤은 늘 맥이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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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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