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다

일곱 여덟 살 어린 시절 나는 인사를 잘했다. 집밖을 나설 때면 하루에 몇 번이든 “엄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니~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어머니가 계시든 안 계시든 소리쳐 인사했다. 어머니의 “오냐~”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기분이 좋았다.

굴렁쇠를 굴리며 동네를 돌다가도 어른과 마주치면 굴렁쇠를 손으로 잡고 멈춰 서서 “안녕하십니껴~”라고 인사했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준 많은 것들 중에 지금 이렇게 늙어버렸는데도 잊혀지지 않고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길에서 처음 보는 어른을 봐도 인사해야 헌다. 하루에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해야 허는 거여. 그러고 집 나설 때나 돌아올 때나 집에 있는 어른에게는 꼭 인사해야 헌다”는 것이다.

나는 인사 잘한다고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인사를 받은 어른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고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문은 내 어머니 귀에까지 들어가 나는 어머니한테서도 여러 번 칭찬을 들었다.

내 어머니로부터 교육받아 내 몸 속에 흐르는 나의 ‘인사DNA’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상사의 호감을 얻는데 일조를 했다. 회사 복도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식당에서든 상사를 보면 나는 습관처럼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했다. 당연히 상사들은 웃는 얼굴로 내 인사에 화답해주었다.

나는 인사는 잘된 가정교육이라는 칩이 몸 속에 심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사를 하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 익히는 것보다 어렸을 때 가정교육에서부터 생겨나는 경향이 더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씁쓸하고 언짢은 것 중 하나가 인사문화다. 서구문화를 동경하는 한국의 젊은 이민자들이 나이든 어른을 봐도 당신과 나는 평등한 인간이야 라는 듯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지나친다. 어쩌다 인사를 해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이! 하면서 손가락을 흔든다. 못되게 배웠다.

서구문화의 근간은 인간평등이라는 어설픈 인식이 서구문화라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풍토까지 조장해 우리의 훈훈한 정서까지 흔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세 손녀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위 말하는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들이다. 큰손녀는 젊은 수의사로 바쁘고, 둘째는 힙합 댄서로 안무가로 활기차다. 막내는 내후년이면 칼리지를 졸업한다. 나는 손녀들을 보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절감한다. 한데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손녀들에게 ‘인사하는 것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다.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내 손녀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다녀왔습니다”고 자연스럽게 인사한다. 저희들 애비 에미의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인사DNA가 저희들 핏속을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정감 어린 인사를 한다.

시대에 뒤쳐진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윗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됨됨이라고 고집한다. 특히 타국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절대 버려서는 안될 우리민족 고유의 정서이며 예의라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서 3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도 손녀들이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면 흐뭇하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수긍하지 못하는 꼰대의 편협된 마음이라고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사는 상대를 존중하는 신실한 마음의 표현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평등만을 떠들어대는 잘못된 개인주의의 수많은 병폐 중 하나가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주의 서구문화일지라도 ‘Respect’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배워야 한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실체를 존중하는 거다. 더불어 인사를 받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인사를 받지 못하는 것은 나의 존재가 부정 당하는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거다.

동네어른들이 어린 내 인사를 받으면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준 것은 자신이 어른으로 존경 받는다는 것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른들은 인사를 받음으로써 무의식 중에 자신의 실존을 확인했을 거다. 인사는 나의 존재에 대한 관심인 것이다.

내 손녀들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에는 나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내포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뿌듯하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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