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화원에는 사람들이 많다. 큰 나무 화분을 트롤리에 가득 실은 사람, 다육식물이 심겨진 앙증맞은 화분을 손에 들고 있는 아이들, 잎사귀가 넓은 실내 식물을 안고 있는 중년 부부, 카운터 앞에 줄이 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꽃이 많은 쪽으로 향한다. 두리 번 거리는 나에게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시클라멘이 손짓한다. 이 꽃은 대체로 향이 없지만 운이 좋으면 향기 나는 꽃을 만날 수 있다. 코를 대며 하나씩 냄새를 맡는다.
나는 후각에 민감하다. 특히 싫어하는 냄새와 좋아하는 냄새가 분명하다. 사람이 스치기만 해도 나는 암내, 옷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수건에서 나는 쉰내, 사람의 머리냄새 등에 예민하다. 외출하는 남편에게 가까이 가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나의 잔소리 중에서 냄새에 대한 것이 제일 많다. 주문이 많아서 귀찮아 지면 남편은 나를 ‘개코’라고 놀린다.
냄새와 향기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꽃에서 나는 것은 향기라고 하고, 음식에서 나는 것은 냄새 라 표현한다. 또한 좋고 나쁨에 대해서도 차이가 있어서 향기는 좋은 것에 대해서만 사용되고, 냄새는 좋고 나쁜 것 모두에 사용된다. 꽃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꽃을 보면 먼저 향기를 맡는다. 꽃이라면 크고 화려함과 상관없이 향기가 있어야 한다. 향기가 없으면 조화 같다.
생일 때 받는 꽃다발도 이왕이면 향이 있으면 좋다. 엄마취향을 아는 가족들은, 고급스러운 향이 나는 장미나 백합, 프리지아, 히아신스 등 향기 나는 꽃으로 선물한다. 소박한 향기의 국화 한 다발도 추억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초여름에 미풍과 함께 매혹적인 향기를 전해오는 라일락, 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진한 향을 뿜어내는 자스민, 이른 봄에 하얀 꽃으로 향기를 내는 매화도 내가 좋아하는 향이다. 은은한 향기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등나무 꽃, 작년 여름 뉴질랜드 남 섬에서 맡은 ‘루핀’의 꽃 향기도 잊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카우리 나무가 있는 와이포우아 숲 (Waipoua forest) (뉴질랜드 북섬)에서 나오는 톡 쏘는 듯한 진한 숲 냄새는 다시 한번 맡아보고 싶다. 이 세상의 수많은 꽃들 중에 향기를 지닌 것은 많지 않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꽃이 크고 화려할수록 향기가 없고, 꽃이 작고 수가 많을수록 향기가 진하고 오래간다. 꽃이 향기를 뿜어내는 이유는 화려한 꽃처럼 눈에 띄지 못하는 작은 꽃들이, 멀리 있는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전략이다.
향기 중에서 가장 오래가는 향, 언제나 맡아도 싫증 나지 않는 향기는 사람에게서 난다. 인위적으로 만든 향수를 뿌려서 내는 외적인 향기도 있지만, 인격에서 나오는 내면의 향기는 사람 만이 낼 수 있다. 편안한 사람, 따뜻한 사람,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성실한 사람이 낼 수 있는 향기이다. 삼십 대 중반쯤 일이다.
복막염 수술을 하고 일주일간 병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 후유증인지 입맛도 없고 식은 땀이 났다. 엄마가 끓여 줬던, 새알이 잔뜩 들은 달콤한 팥죽이 생각났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에는 하얀 솜털 구름이 떠 있다. 그 구름속에 들어가 안기고 싶었다. 미국에 계신 친정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때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그녀, 손에는 찬송가 테이프와 소고기를 넣고 끓인 죽과 밑반찬 몇 가지가 들여 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차를 끓이고 가져온 반찬과 죽을 내왔다. 따뜻한 죽에 그녀의 진한 향기가 가득했다. 주위에 좋은 향기가 있으면 그 향기 있는 곳에 관심이 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에 벌이 모이는 것처럼, 그녀 집에 사람들이 자주 모인다. 나도 대가족의 장남 며느리라는 무게감으로 삶이 고단하면 그녀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따뜻한 밥은 어떤 힘이 있는지 팍팍 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시골이 고향인 그녀는 친정에서 보내준 것이라고 하면서 고춧가루, 말린 나물 등을 챙겨준다. 속담에 ‘먹으면서 정분 난다’고 하지 않던가! 이민 온 후에 한국 친구들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담긴 수첩을 잃어버린 후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그녀,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된다면서 이사간 주소를 알려 주지 않는 동사무소, 그녀의 새 둥지는 어디일까? 살아 있기나 하는지….
그녀의 향기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새록새록 그대로 남아 있다. 그녀를 찾는다는 것을 아는 동창 친구는 내게 한마디 했다. ‘누군가 너의 향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거야, 너도 그녀처럼 하면 되지.’
남의 냄새나 향기에는 지독하게 민감하면서 정작 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남에게 줄 수 있는 향기가 내게 과연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나는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일까?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내면의 갖춤과 따뜻한 품성이 더 해지면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사람이 된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향수로 커버할 수 있지만, 마음 안에서 만들어진 인품의 향기는 숨길 수가 없다. 내 안의 숨겨진 나를 드려다 본다. 마음이 겸손 해진다. 그녀처럼 진한 향기는 내지 못해도 미미한 향기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글 /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