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일기

실로 오랜만에 멤버들이 모두 모였고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서로 조금씩 챙겨온 간식거리를 내놓고 한동안 건강 이야기, 자식 혹은 손주 이야기, 여행 이야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2주 후 가질 봄맞이 아니, 가을맞이 바비큐파티 이야기… 거기에 내년 7월에 가질 10년만의 울룰루 (Uluru) 리마인드(?)여행 계획까지, 나름 알찬 수확들을 거뒀습니다.

참 희한한 것이, 한번 게을러지기 시작하면 이런 이유와 저런 핑계로 툭하면 빠지기 일쑤가 됩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그야말로 고질적인 습관 혹은 버릇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 동안 아내와 저도 바빠서, 몸이 피곤해서, 점심약속이 생겨서, 비가 올 것 같아서, 한국에서 후배기자 부부가 와서 등등의 이슈로 산행을 적잖이 게을리 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토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산행준비를 한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날이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조금 더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유혹은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1만보 이상을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얼굴을 맞대면 반갑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같은 길을 걸어도 숲 속을 걷는 게 훨씬 좋습니다. 나무 냄새, 숲 냄새에 젖어서 걷다가 갑자기 맞닥트리는 이구아나들과의 눈맞춤도 즐겁고 중간쯤까지 걸었을 때 예외 없이 들려오는 벨 버드 (Bell Bird)의 맑고 청량한 노랫소리는 주말 아침을 무한 상쾌하게 만들어줍니다. 반면, 아스팔트 포장 길을 걷는 건 아무래도 조금은 덜 편안합니다. 흙을 밟는 것에서 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은 물론, 제 몸이 헤치고 나아가는 경관도 숲 속의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땅이 질퍽거려 부득이 아스팔트 길을 택했는데 그 동안의 게으름을 혼내키는 건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다행이 근처에 비를 피할만한 쉼터가 있어 몇 분 동안 그곳에 숨어들어 떨어지는 빗줄기에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꾸준히 오가는 사이클리스트들을 스쳐 보내며 반항과 방황이 가득했던 20대 초반시절, 그야말로 사이클에 미쳐 지냈던 날들을 문득 떠올려봤습니다. 뭔가 모를 미소가 입가를 스쳤고 지금은 혹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딘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선뜻 사이클에 올라타지 못하는 제 나이에 새삼스레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남은 명의 호주젊은이들이 씩씩한 발소리를 내며 우리 옆을 스쳐 달립니다. 왠지 모를 부러움으로 그들을 쳐다봤습니다. 20대의 푸르른 청춘을 지닌 그들의 뜀박질에는 거침이 없었는데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어제친 상태였고 여자들은 탱크 톱 (tank top) 차림에 쫄 반바지 차림으로 한껏 몸매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 돌아내려오는 그들과 마주쳤는데 남자들의 배에는 하나 같이 왕(王)자가 새겨진 초콜렛 복근이 선명했습니다.

‘좋을 때다…’라고 혼잣말을 하는데 “좋겠다. 나도 저 나이에는 저렇게 날씬했는데…” 제 앞에서 일행들과 걷고 있던 아내도 부러움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긴 그랬습니다. 24년 전, 아내가 저보다 50일 늦게 가족들과 함께 시드니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내는 군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날씬한 몸매에 긴 머리를 싹둑 잘라 완전 노랗게 물들인 청춘(?)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아내가 맨땅에 헤딩 식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로 많이 망가졌습니다. 야속한 세월 탓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아내의 그 같은 망가짐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게 저였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왈칵 들었습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둘이나 둔 상태에서도 대학생이 지하철역까지 따라왔던 전력(?)이 있는 친구입니다. “저, 죄송한데… 저 아이엄마예요”라는 아내의 멘트에 얼굴이 빨개져 얼른 도망쳤다는 그 대학생의 모습이 새삼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그때대로의 아름다움이, 지금은 지금대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은 사이클 폭풍질주를 하지 못해도, 더 이상은 대학생이 따라오는 두근거림 같은 건 없어도 우리에게는 그때 갖지 못했던 또 다른 색깔과 모양의 행복이 지금 함께 하고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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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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