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던 시절, 그때도 우리는 불편함 없이 잘 살았는데…
얼마 전 만난 서양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온통 핸드폰 중심으로 돌아가고 이것이 없으면 이젠 생활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GOD이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는데? 거짓말만 하고… 핸드폰은 거짓말을 안 해… 핸드폰에 모든 게 다 있지. 모든 것을 알려주고 인도해주고… 이런 핸드폰이 GOD이 아니면 누가 GOD이란 말인가?” 따지듯 달려드는 목소리는 힘이 실려있었다.
01_핸드폰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건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어떤 인생에겐 완전 틀린 말 같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에 대한 투정의 볼멘소리 같기도 했고 기다림 같기도 했고, 물질문명에 대한 자각의 소리로도 들렸다.
길을 건너면서도 차는 안보고 핸드폰을 보면서 건너가는 요즘 젊은이들. 그들은 그것이 없으면 며칠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메신저와 대화는 기본이고 뉴스, 정보, 교통, 지불, 결제, 위치추적… 핸드폰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밥 먹을 때도 핸드폰을 움켜쥐고 화장실에 가서도, 컴컴한 이불 속에서도, 24시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부모가 없어도 살고 GOD 없어도 살지만 핸드폰이 없으면 미쳐버린다는 얘기다. 죽으면 관 속에 각자 핸드폰을 넣어줘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언제부턴가 미사시간에 핸드폰을 꺼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성경책이나 찬송가 책은 이제 가져오는 것도 귀찮은 듯, 그 안에 좁쌀만한 찬송가도 있고 요한이 전하는 거룩한 복음도 있다.
02_핸드폰이 알려주는 것은 3차원의 산물
본인은 무척 세련된 듯 핸드폰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지만 왠지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온갖 잡동사니가 같이 들어있는 핸드폰과 신성한 하느님의 말씀만을 간직한 성경책은 그 차원이 다른 게 아닐까.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이미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3차원의 인간이 4차원인 시공간의 세계, 영의 세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일이다. 이 공간을 넘지 못하면 GOD을 섬길 수 없고 만나지도 못한다.
핸드폰이 알려주는 것은 3차원의 산물이고 GOD이 알려주는 것은 4차원이나 5차원의 산물들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보이지 않는 영이다. 처음부터 가늠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육신의 삶이냐 영혼의 삶이냐, 육신의 편안함이냐 영혼의 편안함이냐를 놓고 가늠해야 한다.
영생이란 결국 그것을 믿고 인정하는 자의 몫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결국 수천 페이지가 되는 그 성경은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너는 나를 믿느냐?”
03_가져야 하는 건지 버려야 하는 건지
오래 전부터 핸드폰을 없앨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도 별로 오지 않는 핸드폰을 호주머니가 불룩하게 나는 왜 가지고 다녔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주 핸드폰이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도 우리는 불편함 없이 잘 살았었다. 이웃을 찾아가고 서로 묻고 의논하고, 사랑의 편지를 쓰고… 편지가 올 때 두근거리며 겉봉을 뜯었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사람들은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아무 혼도 없는 똑같은 그림 케잌이 “카톡! 카톡!” 소리를 지르는 귀빠진 날은, 초라하게 늙어가는 나이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핸드폰이 없으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아 좀 억울하기도 하고…. 가져야 하는 건지 버려야 하는 건지, 깨진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는 정말 혼란스럽다.
글 / 마이클 박 (글벗세움 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