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전기가 나갔었나 봐?” 지난주 화요일 밤, 아내와 둘이 GYM에서 운동을 마치고 아홉 시쯤 돌아왔는데, 우리 집 앞마당을 환히 밝히고 있던 여덟 개의 LED 등이 아직 시간이 안됐음에도 전부 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실 등은 켜진 상태였고 가끔 그런 일이 있곤 했던 터라 별다른 신경을 안 쓰고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주방 가스레인지 후드 등이 모두 켜진 채로 계속 껌뻑 거리고 있었고 어쩐 일인지 팬은 작동이 안됐습니다. 냉장고는 잘 돌아가고 있는데 TV는 켜지지 않았고 에어컨도 조금 돌더니 이내 멈춰 섰습니다. 별채로 내려가 보니 최근에 산 냉장고는 돌아가는 반면 조금 오래된 냉장고와 딤채는 멈춰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켜봤더니 먹통이었는데 희한하게도 TV는 잘 나왔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두꺼비집(?)을 열어봤지만 스위치가 떨어진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이 있는 듯싶었습니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부득이 딸아이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몇 차례 벨이 울리고 딸아이 신랑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 잠시만요. 지금 선영이, 애들 씻기는 중이에요….” 전화기를 딸아이에게 넘겨주려는 딸아이 신랑을 불러 세웠습니다.
“아니야, 종석아. 너랑 통화하려고 전화한 거야….” 갑자기 이상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집 전기상황에 관해 중구난방 설명을 하자 잠시 듣고 있던 딸아이 신랑이 “아버님, 제가 금방 갈 게요” 했습니다. 채 3분도 안돼 달려온 딸아이 신랑은 익숙한 솜씨로 이곳 저곳을 살폈습니다.
속으로 “이젠 됐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한국, 미국, 호주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는 듬직한 전기기술자가 와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240볼트가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100볼트도 안 되는 전기가 들어오고 있거든요….”
대략난감. “대체 무슨 문제이기에 우리가 운동을 갔다 온 두 시간 남짓 동안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단 말인가? 아무래도 날이 밝으면 Ausgrid에 고장신고를 해야 할 모양이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 일이 많은데 별게 다 속을 썩인다….”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때 딸아이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아빠, 지금 아빠네 집 근처 전부 정전이야.” 딸아이가 링크를 걸어준 Ausgrid 싸이트에 들어가보니 우리 집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이 오렌지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나절부터 엄청난 강풍과 마른번개가 계속 되더니 수많은 지역에서 나무가 뽑히고 전기가 끊어지는 등의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던 겁니다.
그런 걸 모르고 밤 늦은 시간에 그 난리를 쳤으니…. “아니 정전이라면 완전히 전기가 다 나가든지, 어떤 건 들어오고 어떤 건 먹통이고 또 어떤 건 방정맞게 껌뻑 거려서 겁보, 쫄보를 놀라게 한단 말인가?” 투덜투덜….
그러고 보니 몇몇 집에서 플래시를 켜놨는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 동네 전체가 깜깜한 상태였습니다. 우리 집은 지난번 리노베이션 때 전체 등을 LED로 바꿔놨던 탓에 정전이 된 후에도 잔류전력으로 인해 늠름하게 빛을 발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가전제품들도 산지 얼마 안된 것들은 잘 돌아가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찌질대고 있었던 거였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딸아이 신랑을 그렇게 고생시킨 게 못내 미안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척을 해도 찌질한 건 참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제 더 나이가 들수록 이런 일이 잦을 텐데…. 착한 우리 아이들은 그때마다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달려올 거지만 말입니다.
조금은 한적한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욕심 내다가도 그러지 못하는 진짜 이유…. 무엇보다도 에이든과 에밀리를 자주 못 본다는 점 그리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때가 두려운 겁니다. 사실, 아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다급한 일이 아니면 아이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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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