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나 중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난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얼굴형이 갸름한 한국인과 달리 중국인처럼 둥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확한 시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선조는 중국 황제의 명령으로 이 땅에 머물게 된 중국인 관료였다고 하니 그들의 착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독서모임 장소로 가는 기차에서 연로한 중국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영어가 아닌 만다린어로 감사를 표현하는 그들의 반응이 익숙하다. 알고 있는 몇 개의 중국어를 사용해 나의 정체를 밝히면 언제나 비슷하게 놀라워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근감이 서투른 중국어를 연습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에 때때로 그 시간을 즐긴다.
이번 달의 도서 <한국전쟁 전사>는 정전 70 주년을 기념하여 ‘와다 하루키’에 의해 2023 년에 출판되었다. 지도자들은 정치와 외교로 자신들의 추잡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국민의 피를 요구하는 전쟁을 일으켰고 무력한 개인들은 그 결과로 비참함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3 년이 넘게 전쟁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짧았지만 아슬했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그리고 미국의 이란 공습 등이 겹쳐지며 선조들과 같은 참담함을 나와 같은 시대의 누군가도 이 시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남북의 지도자들은 전쟁만이 국익을 위한 유일한 길 인양 국민을 설득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권력을 향한 욕망은 숨긴 채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심지어 거짓된 정보를 유포하면서까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전쟁을 정당화한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성향상 부패한 기득권 편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기보다는 이상을 좇는 공산주의를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역사는 그러한 선택이 잘못임을 알려주지만 그 시대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에 강하게 끌렸을 것이다. 전쟁 끝에 북으로 건너갔을지 아님 추위를 싫어하니 남한에 남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민주주의 번영을 함께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반대로 시답지 않은 개인을 우상화하며 자유를 잃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결과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내린 선택이냐에 달렸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비슷한 경우에 어떻게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였다. 떠오른 몇 가지 기준 중 하나는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정보의 바닷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분별력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큰 도전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쉽고 편한 길을 가고자 하는 유혹은 언제나 존재하기에 알고 있는 정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논점과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렵다면 다음으로 고려할 점은 그 집단의 지도자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인문학적인 가치도 고려하는지의 여부라고 생각된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도구로써 공포와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불가능한 이상을 미끼로 끌어들인 후에는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여 자신들을 계속 따르게 만든다. 북한 정권의 감언이설을 온전히 파악하고 나은 판단을 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쟁 중이나 휴전협정 과정에서 포로와 인민을 대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보았다면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 같다.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남기며 다음 역에서 내린 그들은 ‘파룬궁’의 신도들이었다. 기공을 배우며 얻어들은 몇 마디로 중국정부로부터 배척 받는, 인민을 현혹하는 집단으로만 생각했었지만 파룬궁의 한국인 제자에 대한 다큐를 본 후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희석되었다. 만나본 파룬궁 신도들은 명상을 수련한 사람들만이 내뿜는 선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온화하고 겸손하여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그 집단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신도들을 이끄는 방법이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힘든 삶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의 방법으로 명상과 기공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신도의 수를 늘리기 위해 선도하는 이들에게 대가로 돈을 지급하는 것과 설립자를 신격화하는 일은 한국전쟁 전사 속에서 본 욕망을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지도자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판단에서 자유롭거나 매번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인간이 가진 한계는 결정을 위한 완벽한 지식을 얻거나 행동의 본질과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상황이라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기에 판단을 유보하거나 관망만이 최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날카로운 사고를 발전시키고 관련된 사람이나 사건의 논리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발전된 자신만의 판단기술을 사용하여 선택을 한다면 고통을 가져오는 인생의 수많은 어리석은 실수들을 줄일 수 있으리라.
글 / 데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