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영어발음

한국식 영어발음도 나쁘지 않다고 한국 사는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어

“나도 영어 한번 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영어권에서 산지가 벌써 몇 년짼데 영어발음이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핀잔을 주는 동창 은경이에게 내가 한 말이다. 젊어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마음이 몹시 상했을 텐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유가 좀 생겼나 보다.

 

01_발음교정 하려 어릴 때 혀를 수술한다?!

통화 중간중간 뜻하지 않게 영어단어가 튀어 나가는 바람에 친구에게 당하는 애교스러운 수난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영어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말하기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해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식들 영어 공부에 한국 엄마들의 극성이 하늘을 찌른다는데 그 상황이 보지 않아도 믿어지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다. 그래도 발음교정을 하려고 어릴 때 혀를 수술한다는 건 나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조정래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 나온 이야기다. 열 권의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신문에 실린 기사와 인터뷰 자료, 그리고 학술논문까지 4년간의 사전 조사 기록만 해도 육백 권이 넘는다는데….

사교육의 병폐를 고발하는 글에 그 분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썼을 리 없다. 그러니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는가 보다. 국어나 역사 과목을 줄이면서까지 남의 나라말을 배우려는, 스스로 영어의 속국이 되기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 대해 작가는 한탄을 쏟아냈다.

 

02_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완벽하게 하려는 것

온 국민이 한결같이 그러고 있으니 제정신이라고 하기엔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해결할 방도도 보이지 않고 거기에 수치스러움이 더해져 사실 그 책을 읽는 내내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랬나? 절망적인 생각에서 빠져나가려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는지는, 영어 발음에 대한 한국 사람들만의 과다한 집착을 이해해줄 만한 변명거리가 생각났다.

말하기 영어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완벽하게 하려는데 있다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나 인도 사람들이 자기들 발음이 시원치 않다고 고민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남의 나라 말이니 어린아이 같이 기초 과정이 필요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완벽해지기 전까지 함부로 입을 벌리지 않는다. 입을 벌려 간단한 말을 더듬거려야 하는데… 악순환이다.

 

03_정확한 불어발음 위해 앞니 쳐낸 오페라 여가수?!

나는 그 태도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대한 높은 수준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치에게 노래를 시키려고 주변의 사람들이 마이크를 건네며 어르고 달래도 그 사람이 일어나 노래를 부를 확률은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실용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영어를 말한다는 것은 새로운 노래를 배우며 마음을 적시는 시를 읊는 행위다.

그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감동케 하기는커녕 자신의 귀에도 둔탁하고 거친 불협화음이니 남 앞에서 자신감이 들리 만무하다.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친구가 한 말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발음이 정확한 것으로 외국인의 불어 실력을 판단한다고 한다. 불어의 고유한 음률을 무시한 채 영어권 사람들의 영어 식 굴리기의 불어보다는 한국 유학생들의 불어가 더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이 불어를 언어 소통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단적인 예다. 세계적인 오페라 여가수가 정확한 불어발음을 위해 앞니를 쳐냈다는 소리도 있던데….

 

04_내 영어에 한국식 액센트가? 그 말이 왠지 듣기 싫지 않았다

영어는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잘사는 것과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마음이 버무려진 그 어떤 환상이었겠다. 부모 시대에는 해볼 수도 가능하지도 않았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가슴 한 켠에 꿈처럼 간직하고 그 세계를 내 아이들에게 기필코 열어주고 싶다는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의 절절한 염원 같은 것 아니겠나.

최근에 만난 중국 여자분이 내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중국 사람들이 나를 보면 같은 중국 사람인 줄 알고 반색을 하며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터라 그분에게 내가 한국 사람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영어에 한국식 액센트가 있단다. 그 말이 왠지 듣기 싫지 않았다. 한국식 영어발음이 구별될 정도로 우리들이 지구촌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코리언을 말하는 중국 아주머니에게서 우리가 자랄 때 미국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 우호적인 표정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홍콩이나 인도 식 아니면 프랑스 식 영어를 들을 때처럼 우리나라 아이들의 한국식 영어발음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대한민국에 사는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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