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왜…

그와는 시드니라는, 게다가 이스트우드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몇 년을 이스트우드에서 살았고 멋진 남자친구와 예쁜 사랑을 한 추억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기가 겹치지는 않았지만 같은 동네사람(?)이었던 탓인지 우리는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0월 27일이었습니다. 한국 참좋은여행사를 통해 8박 10일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여행을 했는데 그때 그가 여행 인솔자였던 겁니다. 그는 때로는 터프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각양각색 27명의 일정을 여행기간 내내 꼼꼼하고 지혜롭게 챙겼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와이파이 도시락’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었지만 미처 스마트폰 로밍을 해가지 못했던 우리는 줄곧 ‘와이파이 거지’로 지내야 했습니다. 팀 내 모든 공지사항은 카톡으로 전달됐는데 그때마다 그는 우리를 별도로 살뜰히 챙겼습니다. 특히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웹 체크인이 시작됐을 때는 레스토랑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문득 그가 우리 자리로 찾아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아내와 제가 나란히 앉아서 올 수 있는 좋은 좌석을 번개처럼 잡아줬습니다.

여행지에서도 아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는 저를 향해 “두 분 사진도 찍으셔야죠” 하며 중요한 곳, 배경 좋은 곳에서 아내와 저를 향해 자주 셔터를 눌러주곤 했습니다.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케이블카 안에서는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자신의 몸을 여러 번 구기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호주여권을 가진 우리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는데 워낙 시간이 많이 지연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버렸고 가방 찾는 곳에는 우리 가방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그가 옅은 미소를 띤 채 서있었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넘치는 카리스마로 알찬 여행을 이끌어준 그였지만 그는 마음 한 켠이 따뜻한 천생여자였습니다. ‘엄마가 좋아하겠다’며 로마 공항 면세점에서 예쁜 가방을 하나 집어 든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아내가 시드니에서 가져간 양태반 세럼을 한 개 건네자 수줍은 소녀처럼 고마워하던 그에게 저는 제 명함을 한 장 내밀었습니다. ‘안 그래도 호주 여행을 한번 하려 했다’는 그와 우리는 이스트우드에서의 반가운 재회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수요일 아침 이른 시간, 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카톡은 그가 아닌 그의 가족들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부고장은 그가 그날 오전 7시 10분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충격적인 카톡을 받은 지 불과 세 달 반만의 일이었습니다. 2월 27일 카톡에서 그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는데 수술도 안 된다고 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북유럽여행의 가이드가 누구인지 알려주면 우리를 위해 이런저런 당부를 해놓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몸과 마음 잘 챙기라’고 답을 했지만 이런 일이, 그것도 이렇게 빨리 벌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김혜선… 그는 참좋은여행사 창업초기부터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우리회사 사장님은 크게 성공하셨는데 저는 아직도 이러고 있어요…’ 하며 웃어 보이던 그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강미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런데 위암 4기라니… 정말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워커홀릭이었을 그는 우리와 만나기 3일 전까지는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여행 팀을 이끌었고 우리와 헤어진 다음 주에는 베트남 다낭으로 또 다른 팀을 인솔한다고 했습니다.

올해 나이 쉰 살… 그에게 쏟아진 수많은 추모의 글들이 아쉬움과 고마움 일색이었듯이 여행전문가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겠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드는 지극히 보편적인 즐거움은 갖지 못했던 그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습니다. 새삼 ‘하늘은 왜… 좋은 사람들은 저렇게 일찍 데려갈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어 한동안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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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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