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에서 한가지 임무를 맡고 있다. 회원들이 매달 모여 하는 합평 (合評)에 통과된 작품을 격주로 교민 신문사에 보내는 일이다. 원래 이 일은 오랫동안 다른 문우가 해왔는데 내가 이어받게 되었다. 그녀는 국문학도로서 문학적 근육이 옹골지다. 과학도로서 글재주와는 대척점에 있는 나는 그 동안 문학회를 통해 반듯한 글쓰기를 배워 익혔다.
여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비평이 곁들여지는 모임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속절없이 이리저리 치이면 합평받는 자리가 가시방석이 될 수 있다. 반면 어지럽게 난무하는 파편들을 모아 거칠었던 내용을 매끈하게 다듬어내는 회원들을 보면 그들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작품이라도 신문사에 보내기 전 꼼꼼하게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것 또한 내 몫이다. 문단나누기, 띄어쓰기 그리고 맞춤법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문학회 이름으로 활자화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만 미처 대처를 못한 경우도 흔하다.
시드니 교민사회에서 오래 생활한 회원들이 많아 가끔 본인이 수년 전 타 교민지에 투고한 같은 작품이 실리기도 한다. 본인이 기억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점을 간과한 내 탓이 더 크다. 숨을 깊게 몇 번 들이 마시고 내쉬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매번 귀한 지면을 할애해주고 쓴 소리를 내뱉지 않는 ‘코리아타운’ 사장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마감일을 맞추는 것이 신문사의 본질인 이상 나의 분주한 학교생활 속에서 이 기한을 지키기 위해 달력을 활용하고 있다. 이 방법은 유독 한 회원의 작품이 두 번 연속 나오는 일이 없게 교통정리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만약 다음 마감에 맞추어 준비된 작품이 없으면 내 작품을 다른 문우에게 보내 개인적인 합평을 받아 보내기도 한다.
역시 내가 보지 못한 곳을 용케도 지적해준다. 표현의 옳고 그름을 조언했고 내 의도가 급류에 휩쓸려 발버둥칠 때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내 작품이 실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 일년 기한으로 휴가 차 한국에 들어온 후에야 이처럼 급행으로 나간 내 작품을 두고 문학회에서 갑자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회원들의 합평도 거치지 않고 내 임의대로 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생뚱맞았다. 급한 상황은 차치하고 연륜을 앞세워 나를 코너로 몰아가는 그 허망한 의도를 알고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자칫 내 반응으로 진흙탕이 만들어질 것이 뻔했다.
나는 모든 것에 무심해져갔다. 분명한 사실은 각 회원들이 각론만 보는 반면 나는 총론을 본다는 것이다. 특히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회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실리는 속도가 유독 느리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에 입각하여 중복되지 않게 그 동안 입력과 출력을 적절히 조절해왔다. 나는 트라우마로 시달렸다. 불현듯 삼십여 년 전에 겪은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바다를 건넜다.
그때 나는 한국생활을 정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응모한 연구과제 책임자가 다른 이름으로 둔갑을 했다. 결국 연구비의 수령자는 후배교수가 되었고 과제신청에 함께 이름을 올린 공동연구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고 한다.
심한 배신감과 함께 무력감으로 힘에 부쳤다. 끝내지 못한 논문 작성으로 동료교수들의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대학원생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데 벌써 호칭이 달라졌다. 한국에서라면 금세 처리할 수도 있는 일을 며칠이 지나도록 미루기 일쑤였다. 외국에 갔으니 그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느긋하게 해야 한다고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주는 양. 바다를 건너간 사람은 아예 다시 볼일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작태에 트라우마를 겪은 셈이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중증외상 (重症外傷) 센터 즉, 트라우마 센터 (Trauma Center)의 초석을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국종 교수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내린 중증외상센터 정의는 정곡을 찌른다.
“이곳은 용광로와도 같다. 한번 불이 붙어 가동하기 시작하면 폐쇄하는 순간까지 멈출 수 없다. 거의 반은 죽어 실려온 환자들이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인공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한 채 죽음의 늪에서 밤새 헤매는 곳이 여기다. 오로지 의료진만이 그 곁에서 터진 장기를 꿰매고 끊임없이 약물을 투여하고 기계들을 조작해가며 환자의 숨을 이승에 잡아둔다. 그 어느 조직이나 정부부처도 24시간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일하지 않는다.”
중증외상 환자 치료는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생환에 분명 도움이 되며 또한 외상외과 특성상 다른 임상과들과의 협진이 필수적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센터로 환자가 몰려올수록 적자가 증폭하는 현실을 그냥 방치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실정이다.
그 틈새에서 선진국형 센터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이국종은 세상의 무서움과 한국사회의 비정함을 제대로 마주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그의 트라우마가 적나라하게 ‘골든아워’ 책 두 권에 드러나 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생과 사의 경계인 중증외상센터의 실체가 그의 진솔한 기록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없이 미안했다. 좀더 일찍 같이 안타까워하고 공감해주지 못해서. 해외에 있어서 전혀 몰랐다는 변명으로는 부족했다. 그 여느 책보다 더 진중하게 글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이국종이 일으킨 회오리에 발목이 잡혀 온전히 빨려 들어갔다.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거의 모든 내부장기가 으스러진 여섯 살 아이를 기적적으로 살려내고 또 그 아이가 잘 자라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 군 입대를 목전에 두고 이국종을 찾아온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실제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과 죽음의 문턱에 있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헬기조종사 및 소방대원들의 분투와 희생이 묘사된 위대한 서사 (敍事)다. 이 두 권의 책은 바로 이국종의 <칼의 노래>이다.
이국종의 트라우마 상처에는 아직도 딱지가 내려앉지 않았다. 그의 바람대로 선진국 수준의 센터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구급 헬리콥터가 중증환자를 장소에 구애 없이 골든아워 내에 실어 나를 수 있을 그날이 올 때까지 아물지 않을 것 같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니 내 트라우마가 부끄러움과 한데 붙어서 안개처럼 뿌얘진다.
글 / 박석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