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카포 가는 길 ③

지진으로 변해버린 대성당의 모습은 처연했다. 지붕이 군데군데 무너져 내려앉았고 벽이 부서져 나가버린 잔해가 눈앞을 어른거렸다. 출입을 막아놓은 철망 사이로 보이는 성당의 앞마당은 잡초가 어지러웠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여기가 정녕 하느님의 나라란 말인가? 그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찌해서 세상은 정작 부숴져야 할 것들은 부서지지 않고, 부숴져서는 안될 것들은 부숴지는지 먹먹했다. 마땅히 부숴져야 할 것들은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데, 그런 것들은 언제나 멀쩡하고, 부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은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니 그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고, 소외되고 가진 것 없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와 안녕으로 다독여준다는 곳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증오와 욕심과 허세와 미움을 담고 사는 못된 인간들이 득시글대는 곳은 아무렇지도 않는 그대로이니, 대체 하느님은 뭘 하자는 것인지,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혼동되고 있으니 정말 하느님이란 조작된 허상인 건가?

1800년대를 살았다던 ‘니체’의 주장처럼 신은 정말 이미 그렇게 오래 전에 죽어버렸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지독한 지진에도 끄떡없는 건물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하필이면 신을 믿어 우러르고 찬양한다는 성전이 흉하게 부셔져 내렸으니 공허하기도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고귀하고 고고하고 청정 해야 할 하느님의 나라가 욕심과 이기심으로 꽉 찬 음흉하고 음침하고 거짓된 인간들에 의해 허무하게 변질되어가는 모습이 흔한 세상이라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평화, 사랑, 순수, 이해, 용서, 희생이 흘러 넘치고, 그러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는 사람들이 넘쳐나야 하는 대성당만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가 세상을 등진 먼 훗날에도 그대로 거기에 장엄한 모습으로 있어주기를 그는 긴 세월 속에서 처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는 대성당지붕을 올려다 보면서 성당이 무너지기 전에 성당에는 종을 치는 종지기가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종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져서 힘들고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와 평온함을 나눠주는 안식과 사랑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별안간 ‘노틀담의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가 울려 대던 성당의 우렁찬 종소리를 환청으로 들었다. 홀로 연모하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게 들려주기 위해 성당의 종을 울려 퍼지게 하면서 기쁨으로 소리쳐 웃어대던 콰지모도의 그 주기만 한 외길의 사랑의 종소리가 꿈결처럼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다가, 그는 오랫동안 잊혀지고 낯설어진 자신의 세례명을 떠올렸다.

그의 세례명은 ‘알퐁소’다.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 세례명이다. 그는 ‘별’이라는 글을 쓴 소설가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et)’를 닮고 싶어 했었다. 그는 별에 묘사된 숭고한 사랑의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평온했다.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며 기거하는 목동이 짝사랑하는 주인댁 따님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양식을 날라다 주려고 산에 왔다가 홍수로 길을 잃었다. 목동은 비에 젖은 아가씨를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아가씨 곁에서 밤을 새우며, 아가씨를 위해 유성, 은하수, 큰곰자리 등 신비하고 황홀한 별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별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툭 고개를 떨구며 평온한 잠이 든다.

그렇듯 청순하고 존귀한 사랑을 누구에겐가 나눠주고 싶어 했을까? 그의 늙은 주름진 입가에는 회한이 서린 쓸쓸하고 덧없는 미소가 잔물결처럼 찰랑거렸다.

대성당광장에 땅거미가 찾아 들었다. 더 어둡기 전에 지친 몸뚱이를 눕힐 숙소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고, 현재이고, 생명이고, 삶이었다.

침낭, 구겨 넣은 여벌 바지 하나, 양말 한 켤레, 바람막이 점퍼, 세면도구가 전부인 작은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낯선 거리를 더듬거리며 먹을 거리를 찾아 음식점을 기웃거리고, 하룻밤 신세 질 여인숙을 확인했다.

어둠이 천지를 뒤덮자 별것도 아닌 세상이 썰물처럼 밀려갔다. 초라한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 병 앞에 놓고 고개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은 별 떨기만 반짝거렸다. 아, 이 얼마 만에 찾아와 본 평화의 세상인가!

 

* ‘테카포 가는 길’은 총 4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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