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전철에서 내리자 열기가 습기를 머금고 훅 달려들었다. 어릴적에 느껴본 듯한 한국의 여름 날씨보다 몇 단계 강한 무더위를 만난 셈이다. 여행 준비 할 때만 해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태국의 더위를 맞닥뜨리고 나니 마치 속수무책으로 황망히 당하고야 만 것 같았다.

전철역에서부터 출구를 향해 한참을 걸어 나오자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호텔까지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이런 날씨에 걷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마침 역 앞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에 어린 아이를 옆에 둔 중년의 전형적인 방콕 아저씨가 보였다.

아이는 핸드폰을 들고 게임 하느라 정신 없었고 꽃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은 거친 그 남자와 손짓발짓 해가면서 겨우 호텔 셔틀버스를 부르는데 도움을 받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를 위해 가게 저만치 나가서 차가 오는지 긴 목을 빼고 보더니 우리가 안전하게 탈 수 있게 확인까지 하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배려에 한국에서 느끼는 정을 느꼈다.

우리가 생각했던 셔틀버스와는 확연히 다른 오픈카가 도착했다. 놀이공원에서 타는 셔틀버스를 닮았는데 방콕 도심 속을 놀이공원처럼 여유 있게 잠시 누비는가 싶더니 곧바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는 웅장했고 고개를 들자 돔 모양의 유리지붕으로 된 천정까지 올려다 볼 수 있었다. 황금빛으로 멋을 낸 벽과 마치 성안에서 볼 수 있는 듯한 고급 가구들 그리고 수많은 꽃들로 장식이 되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5성급 호텔이었다.

두손을 모아 합장하듯 인사하는 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시원한 보랏빛 차를 마셨다. 순간 더위가 내려가며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귀빈 대접을 받으며 방을 안내 받은 후 호텔의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수영장, 사우나, 헬스장 등 시설들이 훌륭했다. 여기 머무는 시간이 쏜살같이 금방 지나가버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내 한 가운데서 하늘을 보며 수영을 하고 사우나를 하고 나서야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다소 풀린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싶은 만큼 시켜도 호주달러로 계산해 보면 꽤 저렴한 편이다. 수많은 호주인들이 태국을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어제 예약해 둔 여행이 시작되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중년으로 보이는 운전사의 안내를 받으며 차량에 올랐다. 시내를 통과해 한참을 가더니 한 호텔에 멈춰 현지가이드와 다른 한 커플이 탔다. 마침 그 커플은 호주 퍼스에서 여행을 왔는데 대화를 하면서 미세한 액센트를 느꼈다.

알고 보니 여자는 크로아티아 출신이고 남자는 칠레에서 왔다고 했다. 아이들을 거의 다 키워 우리와 비슷한 인생의 여정을 걷고 있는 듯했다.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 여행가이드 소개도 받았다. 그는 반년은 태국에서 또 다른 반년은 시드니에서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국가에서 형편없이 적게 나오는 노모의 연금을 언급하며 태국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빈부차이의 갈등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그는 여느 순박한 태국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화력 (話力)을 지녔다. 그도 고국에 와 있지만 이렇게 시간만 나면 가이드로 나와 일해야 한다며 중년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보인다. 태국은 더운 계절 그리고 더 더운 계절 오로지 이 두 계절만이 있다면서 임산부처럼 배가 나온 그의 몸무게만큼 나갈 정도의 땀을 하루 종일 흘렸다.

전 세계에서 이곳을 보기 위해 태국에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첫 기차가 오는 시간에 맞춰 도착 했는데도 장사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뒤엉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차가 다가오는 기적소리에 맞춰 장사하는 사람들이 천막 지붕과 자판대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걷어내고 또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재빨리 원상복귀 시키는 민첩성을 보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공산품에서부터 농산물 및 과일과 생선 파는 가게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기차길 바로 옆 시장 터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이 워낙 유명해서 베트남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만들어 여행객을 끌고 있지만 이곳이 원조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보이는 열대나무들과 아랍어와 비슷하게 보이는 태국어들로 가득 찬 간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섭씨 40도의 더위 속에서도 도로공사는 계속되었고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의외로 여자들이 많아 보였다.

쉬는 시간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나 보다. 축 늘어진 이구아나처럼 누워있으니 말이다… 트럭 뒤에서는 일용직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짐짝처럼 실려가고 있었다. 눈의 초점마저 잃은 그들은 이 불볕 더위 속에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달리다 유리창도 없는 버스에 탄 남녀노소 승객들을 보았다.

삶의 무게를 지고 또 나름대로의 시간 속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리라. 작열하는 태양 속을 뚫고 달리기를 기다리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은 도로 가에 줄지어 핸드폰을 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에 극치를 달리는 모던한 빌딩 사이에서 그들의 모습은 불협화음처럼 들려온다. 그것은 어제 빌딩 사이로 난 골목길에서 만난 노점상인들과 그 사이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의 모습을 씁쓸히 떠오르게 했다.

우리 일행은 코코넛 팜에 잠시 들린 후 플로팅 마켓 (floating market)에 도착했다. 젊은 청년이 우리를 태우고 물길을 가로지르며 보트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내다가 때로는 유유자적 한가로이 노를 젓다가를 반복했다. 어리게 보였지만 경험이 많은 베테랑처럼 보트를 운전하는 실력이 대단했다. 마치 베네치아 물길을 지날 때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주위환경에 난 이쪽저쪽을 번갈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트는 물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 구석구석을 미친 듯 헤매고 다녔다. 물위에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보이기도 했고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은 물은 탁하기까지 했다. 보트사고가 나 한 젊은이가 강물을 마셨는지 옆에서 구토를 하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물속에서 보트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여러가지 삶의 모습들이 영화장면들처럼 눈앞에서 휙휙 지나간다. 호객행위를 하는 이, 점심준비를 하는 이, 설겆이를 하는 이, 차를 마시며 유유자적 멍 때리고 있는 이, 삼삼오오 모여 까르르 웃으며 대화하는 이들. 우리를 태운 보트는 이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스치며 물길을 가르면서 지나간다. 이런 생활환경을 그림으로 아름답게 승화한 미술작품을 마켓에서 만났다. 난 한참 동안이나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슬프고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람들 이야기가 내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빈부의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태국을 다녀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나라 60-70년대 당시 생활상들을 직접 보고 온 듯했다. 비록 몸은 편안했을지언정 여행지에서 보이는 열악한 현실로 마음이 불편했던 여행이었다. 그곳에서조차 빈부의 갈등을 야기시킨 자본주의의 한계가 반복되고 있었다.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었던 5성급 호텔 앞 골목에서 마주한 태국 서민들의 애환 어린 삶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려 마음이 아려온다. 혹자는 지금 태국이 최고의 투자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부자와 가난한 이가 현저하게 차이 나지 않고 드러내어 보이지 않는 곳, 그리고 다수가 행복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했던 농촌사상가 고 전우익 선생의 말이 내 귓가를 끊임없이 맴돈다.

 

 

글 / 송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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