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아는 크고 동상은 왜소해
같은 물살에도
엉아는 끄떡없고
동상은 힘겨워
망망대해 등에 지고
서로 마주한 형제
하늘이 묶어 놓은
운명의 거리
밀물이 올 때면
서로 멀어져 있다
썰물이 지나가면
양손 뻗어 손 잡는다
엉아네 방주는 크지만
동상에게 보내지 못하고
동상의 외로움
엉아가 도울 수 없어
운명은 친절하고
때론 잔인해
형제의 소망은
하늘에 맡기자
그 소망 버리지 못해
달님이 미소 짓는 밤
그리움의 출렁거림
띄워 보낸다
*엉아: 형(전라도 사투리)
*동상: 동생(전라도 사투리)
*큰개섬: 완도 고금도에 있는 섬
*장개섬: 작은개섬: 완도 고금도에 있는 큰개섬을 마주한 섬
시작노트
내 고향 완도군 고금도.
학교 앞에는 넓은 모래사장과 얕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그 바다 위에는 두 개의 섬이 서로 마주 보듯 떠 있었다.
오른쪽은 큰개섬, 왼쪽은 장개섬.
개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
미술 시간마다 우리는 그 두 섬을 그렸다.
누군가의 그림 속 섬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다른 그림 속 섬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어떤 그림에서는 큰개섬은 거대했고 장개섬은 바위 하나만 한 모습으로 왜소했다.
어떤 그림에서는 모래사장으로 이어져 있었고
또 어떤 그림에서는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었다.
마치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어느 날, 막내고모를 따라 큰개섬에 간 적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던 모습보다 훨씬 웅장한 섬.
섬 꼭대기에는 딸기밭이 있었고, 바다의 향기를 머금은 달콤한 맛은 오래도록 혀끝에 남았다.
섬을 둘러싼 커다란 둔벙 속에는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장개섬에는 가본 적이 없다.
큰개섬의 절반쯤 크기일 뿐인데, 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고향을 그리워할 때면 언제나 두 섬의 모습이 떠오른다.
37년 전, 나는 남편과 딸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왔다.
뒤이어 여동생 가족도 이민을 와서 우리는 서로 가까이 머물며 의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두 딸은 출가하고 나와 남편은 블루마운틴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매주 함께하던 여동생과의 만남은 점점 줄었고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어쩐지 서먹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애써 더 자주 만나려 한다.
이민의 세월 속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시를 썼다.
「큰개섬 장개섬」.
그 섬들은 마치 나와 여동생 같았고 고향은 언제나 사랑이 남겨진 자리였다.
글 / 지 송 (글무늬문학사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