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테슬로 비치, 그 바다가 그립다

겨울비가 예고 없이 쏟아진다. 겨울비는 그리움을 안고 찾아왔다. 은빛 비늘이 인도양에 부서지던 그 겨울, 먼 수평선 끝을 말없이 바라보며 내 젊은 날 함께 했던 수잔. 그녀가 몹시도 그리운 날이다.

 

서부 호주 퍼스, 낯선 도시에서 이민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의 나이, 한 남자를 따라나선 그 길은 만만치 않았다. 사막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았던 날들이 연속이었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이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그즈음 내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 수잔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부모님을 따라 이민해 왔다고 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녀는 외국인 같은 착각을 할 외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렸을 때 혼혈아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수 없을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마주한 그녀는 발음도 정확하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수잔 가족이 퍼스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워 아버지는 멀리 지방으로 떠나고 남겨진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자식들이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에 담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쳐 주었다. 수잔은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나보다 더 잘 알고 불렀다.

 

그녀의 차분한 말투와 표정에 매료돼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한국 사람이 많지 않은 이민 초창기에 만난 오빠 친구와 이십 대 초에 결혼한 수잔은 평안해 보였다. 그녀는 한국에 대한 동경이 있으면서도 두려움이 커서 한국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족이 퍼스에서 함께 지내니 한국에 갈 일이 없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비를 좋아하는 나와 수잔은 비 내리는 날은 드라이브를 나서곤 했다. 창밖 풍광에 감탄을 하며, 달리는 차 안 울려 퍼지는 노래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시내를 지나 30분 정도 달리면 인도양이 펼쳐진 코테슬로 비치에 도착한다. 주차장 옆에는 노퍽 소나무가 줄을 맞춰 서 있다. 처음 본 이 소나무는 뉴칼레도니아와 뉴질랜드 사이 남태평양에 있는 노퍽섬 침엽수라고 한다. 바늘 모양의 잎이 수평으로 자라는 이 소나무는 한국에서 보았던 소나무가 아니다. 그러나 소나무라는 이름만으로 정겹게 느껴졌다. 차를 세워놓고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지 않는다. 끝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멀리 물끄러미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빗줄기는 세차게 바다에 떨어져 출렁거리지만, 그 바다는 성내지 않는다. 우산도 없이 우리는 바닷가 근처 카페로 향했다. 통유리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호주 사람들만의 여유라 할까, 표정이 밝다. 피아노 선율에 감미로운 노래가 휘감은 카페 안에는 비에 흠뻑 젖은 사람들과 뽀송한 사람들이 어울려 있다. 잠시 줄을 섰다가 창밖 인도양이 훤히 보이는 가장자리에 앉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저 멀리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비가 내리지 않는 인도양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이나 잔잔하다. 백사장 모래알들은 반짝이는 별처럼 보이고 스노클링과 서핑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햇살이 반사되는 광활한 인도양은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가 없을 만큼 황홀하다. 그런데도 수잔과 나는 비 오는 날을 더 좋아해서 예고 없이 소낙비가 내릴 때마다 길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시드니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쿵! 머리를 맞은 듯 온몸에 힘이 빠졌다. 시간이 더디 가기를 바라며 그녀와의 이별을 서서히 준비해야만 했다. 한 달 후, 인사를 나누는 공항에서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한여름의 더위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여름 밤, 수잔 가족은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그녀가 없는 도시는 텅 빈 듯했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나를 보았다. 헤어나려 애쓰지도 않은 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리움은 짙어만 갔다.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수잔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곁으로 오라고 했다. 빨리 오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왠지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나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들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었고 그 해 여름 나는 그녀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삶이 또다시 두렵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로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켠에 아쉬움과 서글픔이 둥지를 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루하루 바쁜 그녀의 일상으로 들어갈 틈이 없다. 집안 살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직장 생활까지 하는 그녀는 24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나 또한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점점 시간에 밀려 살았다. 전화하는 시간도 맞추기 어려웠다.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조심스럽고 나는 나대로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움을 담고 살아가지만, 함께 할 시간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면 긴 한숨을 내몰아 쉬는 그녀가 몹시 안타까웠다. 지쳐서 돌아오는 집은 또 다른 일터 같다는 그녀를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었다. 비 내리는 날 바다에 갈까? 목젖을 타고 올라오던 말이 묵직하게 다시 내려가고 말았다.

 

금요일 저녁이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피커폰으로 그녀가 안부를 묻는다. 목소리가 지쳐 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유난히 코테슬로, 그 바다가 그립다.

 

 

최지나 (문학동인캥거루 회원·2010년 ‘문학시대’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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