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는 마음 나누는 최적의 도구

캘리그래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 널리 퍼져나가길

본 칼럼은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가운데 이민자들의 호주사회로의 순조로운 융합을 돕기 위한 뜻에서 기획됐다. 노인과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포함, 다양한 서비스분야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를 포함,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한인커뮤니티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들을 제공한다. 이번 호에서는 한인커뮤니티를 넘어 호주사회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김양훈 캘리그래피스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01_주변지인들 부탁으로 자연스레 공부방 운영

2024년 2월 라이드 카운슬 주관 ‘New Year Day 행사’에서

뒤늦게 인생중반에 캘리그래피스트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것은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대학시절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외국에서의 삶을 늘 꿈꿔왔던 남편과 함께 당시 시드니에서 유학 중이던 여동생을 만날 겸 우리는 시드니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

여행하는 틈틈이 유학원을 다니며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호주로의 이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는 경쟁이 심한 한국 교육시스템 속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다. 8년 넘게 다니던 삼성을 떠나고 호주로 이민 간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지인들 대부분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주저 없이 호주 행을 택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2개월만인 2001년 12월, 남편과 아이를 안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남편은 영주권 취득을 위해 회계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이후 우리는 호주시민이 되었다. 현재 남편은 이민법무사로 일하고 있으며 우리의 바람 대로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란 큰 아이는 시드니 콘서바토리움에서 피아노연주를 전공했고 11학년인 둘째 아들은 콘트라와 첼로를 하고 있다.

이민 초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문제도 컸지만 그보다는 공부하느라 바쁜 남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자주 아팠던 큰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내 인내의 바닥을 보게 된,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호주에서의 첫 2년이 고비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기대보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니 힘들었던 경험도, 행복했던 일도 대부분이 사람으로부터였다.

남편이 아들 둘을 장학생으로 하이스쿨에 입학시키면서 ‘아빠표 공부’라는 게 소문이 나면서 자녀들의 공부를 주변지인들이 부탁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공부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학습습관과 성적이 향상되는 가운데 우리는 학생들의 가족과 한 배를 타고 공동육아를 한다는 마음이 형성되기도 했다.

 

02_카스와의 첫 만남은 2022년 커뮤니티 자원봉사 워크숍

2024년 8월 주시드니한국문화원 주관 ‘한국 몰입의 날’에 참가한 학생들과 함께

코비드-19로 인해 공부방 운영은 중단되었지만 그때 인연이 되었던 부모들과 학생들은 지금도 나에게는 보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내준 무한한 신뢰가 아니었으면 호주생활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했던 계기도 그들에게 끊임없이 감사와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그 마음이 캘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의 나로 이끌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던 15년 전만 해도 교민들의 모임이 많지 않았다. 엄마들끼리 모여 서로 고민과 외로움을 나누면서 커피 한잔 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리고 커뮤니티모임이라고 하면 그저 어르신들이 모이는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한인커뮤니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던 중에 카스와의 인연이 우연히 시작되었다. 카스라는 기관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카스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호주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컸다.

카스와의 첫 만남은 2022년 ‘커뮤니티 자원봉사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에게 캘리그래피스트로서 봉사하는 일과 캘리 작업을 함께 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였다. 이 행사에 강사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반교민들을 위한 캘리 그래피 수업, 이름도 우아한 ‘그레이스 캘리’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년 정도 진행된 이 모임에서 교민들은 바쁜 일상에서 캘리 작업으로 마음이 쉬어갈 수 있었기에 강사인 나와 학생들 모두에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 학생들도 나처럼 캘리그래피에 열정을 갖고 그래서 직업으로 연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캘리는 다양한 분야와 콜라보가 가능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캘리그래피는 나에게 ‘몰입’이라는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 나누면서 살라던 부모님의 당부가 늘 숙제 같았는데 캘리는 내 마음을 나누는 최적의 도구가 되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업을 통해 작품을 써서 나누어드린 것이 지금까지 3000장이 넘어가고 있다. 그 동안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에 참가하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올해 주시드니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열린 ‘한국어 몰입의 날 ‘행사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캘리를 통해 다양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보람 중의 큰 보람이다.

 

03_윤동주 시, 아름다운 한글로 오페라하우스 지붕 장식하고파

김 작가의 다양한 캘리 작품들 1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앞으로는 한글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정서를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더 널리 알려주고 싶다. 더 욕심을 내보면 매년 비비드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형형색색의 빛과 다양한 모양으로 물들이는 오페라하우스 프로젝트에서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를 윤동주의 시나 아름다운 한글로 장식하고 싶다.

카스와 인연이 되면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봉사를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예전에 인식하고 있던 봉사활동은 나는 힘들어도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내가 카스를 포함, 여러 곳에서 하는 활동은 나도 다른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는 통로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다문화사회복지기관으로서의 카스가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하고 체계적이고, 서비스의 차별화로 한인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카스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나 또한 내가 가진 것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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